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바카라 온라인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이 시에 나오는 ‘내 청춘의 바카라 온라인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라는 구절은 박정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2001년에 나온 시집이니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워낙 강렬한 문장이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의 시 덕분에 격렬비열도라는 섬을 처음 알았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바카라 온라인(格列飛列島)는 섬들의 모습이 기러기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충남 태안의 신진도에서 서쪽으로 약 55㎞ 떨어져 있지요. 백령도를 제외하면 가장 서쪽에 있어 ‘서해의 독도’로도 불립니다. 정확하게는 ‘격렬비열+도’가 아니라 격렬비(格列飛) 열도(列島)입니다.
이곳은 등대가 있는 북바카라 온라인도와 무인도인 동바카라 온라인도·서바카라 온라인도의 3개 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3형제 중 가장 큰 섬은 동바카라 온라인도입니다. 북바카라 온라인도는 유인 등대가 있는 섬이자 국유지이고, 나머지 두 섬은 사유지입니다. 이곳은 조기 등의 황금어장으로 유명했습니다. 가장 서쪽에 있는 서바카라 온라인도는 2014년 중국인에게 팔릴 뻔한 사연을 안고 있습니다. 이후 정부가 외국인 거래 제한구역으로 묶었지요.
이 특별한 섬은 박정대 시인의 시 덕분에 유명해졌습니다. 그에게는 이 섬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곳의 실제 모습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제가 말하는 ‘내 청춘의 바카라 온라인’는 ‘격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비열’하기도 한 청춘의 한 자락을 말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한참 청춘의 시절을 통과하고 있을 때, 제가 겪은 청춘은 ‘격렬’하면서 ‘비열’했습니다. 비열하다는 건 다른 의미에서는 어떤 용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목숨 바쳐 격렬할 필요도, 비열할 필요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지나온 청춘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딱 ‘바카라 온라인’이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바카라 온라인하기도 하고 비열하기도 한 청춘의 한 시절은 누구에게라도 불꽃 같고 얼음 같은 사랑의 한 극점이겠지요. 그리하여 이 시는 손택수·장석남·정끝별·박후기 등 여러 시인들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박후기 시인은 시 ‘바카라 온라인’에서 ‘격렬과/ 비열 사이// 그/ 어딘가에/ 사랑은 있다’는 5행 17자의 짧은 연가로 이 섬을 노래했습니다.
정끝별 시인은 여행산문집 『여운』에서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이라는 시에 대구를 붙여 ‘불멸과 불면과 사랑과 입맞춤으로 꽃 피울 수 있는, 사랑의 적막과 멀미와 고독과 맞대면하고 섰을 때라야 갈 수 있는, 사랑의 은유와 사랑의 환상을 나란히 잇대놓았을 때라야 볼 수 있는 풍경들, 저 바카라 온라인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라며 ‘저 바카라 온라인에 갈 수 있는 한, 가 보고 싶은 한 여전히 청춘일 겁니다’라고 썼지요.
이렇게 보면 이 시에서 ‘섬’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지만, 이 시에는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과 ‘음악 같은 눈’이 함께 스며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 제목도 ‘음악들’입니다. 그의 시에는 음악적 요소가 많이 등장합니다.
시집 약력에도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라는 내용이 나오지요. 특이한 이름의 이 밴드를 그는 시인 강정, 리산과 함께 2015년에 결성했습니다. 그는 “모든 글자는 소리로 환원되며 모든 시인은 밴드에 속해 있다”면서 “쉼표로 가득한 시는 음악으로 가는 말발굽의 간주곡”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때 서울 홍익대 앞 뮤직바의 2층 창가에 앉아 밤새워 음악을 듣고 시를 썼습니다. 집에서도 일찍 저녁 먹고 잠들었다가 밤 11시쯤 일어나 음악을 들었지요. 그러다가 발동이 걸리는 새벽 서너 시에 시를 썼습니다. 어떨 땐 아침 7시에야 고개를 들곤 했지요.
그렇게 음악의 이미지를 내장한 생활 속에서 가끔은 ‘그대’를 ‘발명’하기도 합니다. 내친김에 ‘그대의 발명’이라는 시를 함께 감상해봅니다.
‘느티나무 잎사귀 속으로 노오랗게 가을이 밀려와 우리 집 마당은 옆구리가 화안합니다/ 그 환함 속으로 밀려왔다 또 밀려 나가는 이 가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 장의 음악입니다/ 누가 고독을 발명했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다 음악입니다/ 나는 지금 느티나무 잎사귀가 되어 고독처럼 알뜰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누가 저녁을 발명했습니까 누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사다리 삼아서 저 밤하늘에 있는 초저녁 별들을 발명했습니까/ 그대를 꿈꾸어도 그대에게 가닿을 수 없는 마음이 여러 곡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저녁입니다/ 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