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싸?" 슬롯사이트 사 먹으려다 '깜짝'…이유 알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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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반값된 '바다의 산삼'
내수 침체에…'고급수산물' 슬롯사이트 수요 ↓
내수 침체에…'고급수산물' 슬롯사이트 수요 ↓

12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올 1월 슬롯사이트 산지 가격은 ㎏당 2만4000원(감모율 포함)으로, 전년 동월(3만2600원) 대비 26.4% 하락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2년(5만원)과 비교하면 3년 새 52% 떨어졌다. 감모율은 저장·유통 과정에서 손실되는 비율을 말한다.
소비자가격도 덩달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전날 슬롯사이트(중품·5마리) 소매가격은 1만2349원으로, 평년(1만5110원) 대비 18.3% 내렸다.
슬롯사이트처럼 가격이 내려간 수산물은 찾기 힘들다. KMI에 따르면 지난달 우럭(통영산 500g 기준) 산지 가격은 ㎏당 1만5500원으로, 전년 동월(8800원) 대비 76.1% 뛰었다. 유달리 더웠던 지난해 여름 양식장에 있던 우럭이 집단 폐사하면서 수급이 불안해졌다. 광어(제주산) 산지 가격도 ㎏당 1만7000원으로 최근 5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슬롯사이트값이 바닥을 치는 것은 공급량이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나서다. 지난달 슬롯사이트 출하량은 2273t으로 1년 전(1654t)보다 37.4% 늘었다. 업계에선 “비수기에 월 기준 공급량이 2000t을 넘긴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왜 출하량이 급증했냐는 점이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설 명절이 1월로 앞당겨져 공급이 늘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KMI는 이달 출하량(1650t)도 작년 2월(1357t)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슬롯사이트 생산량은 장기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였다. 성진우 KMI 수산업관측센터 연구원은 “2003년께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슬롯사이트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출하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슬롯사이트 양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출하 주기도 1년 6개월에서 1년으로 짧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상황을 급속도로 악화시킨 건 지난해 여름철 유일하게 한반도를 향했던 태풍 종다리다. 종다리는 제주도 서쪽을 거쳐 전남 진도와 흑산도 해역을 지나쳤는데, 이때 바다 저층에 머물러있던 15도 안팎의 차가운 물을 전남 완도까지 밀어 올렸다는 설명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당시 한반도 해역의 표층 수온은 28도에 육박했는데, 완도는 차가운 물이 들어오면서 고수온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다른 지역 양식장에서 ‘역대급’ 폐사가 잇따를 때도 전남 완도만큼은 상대적으로 ‘세이프 존’이 된 슬롯사이트다.
실제로 지역별 출하량 추이를 보면, 완도는 1년 새 1071에서 1651t으로 580t(54.2%) 급증했지만, 기타 지역은 583에서 622t으로 39t(6.7%) 늘어 큰 차이가 없었다. 김양수 완도 슬롯사이트생산자협회 본부장은 “지난해에 연간 슬롯사이트 생산량이 전년 대비 2000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500t 정도만 줄었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고 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슬롯사이트 같은 고급 수산물을 구입하기엔 엄두가 안 나서다. 차덕호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회장은 “슬롯사이트은 비교적 가격대가 있는 수산물로, 선물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엔 가장 먼저 수요가 죽는 품목”이라고 했다. 김중견 한국슬롯사이트생산자협회 본부장은 “어민들이 설 명절이 있는 1월엔 그나마 수요가 있으리라 기대하고 물량을 대거 내놨는데 낭패를 봤다”고 했다.
KMI는 8월에 슬롯사이트 산지 가격이 ㎏당 2만3000원까지 떨어지는 등 올 한해 슬롯사이트가격이 낮게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완도군청은 올해 시설감축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어민들의 자율 감축이 아닌, 군청이 사업예산까지 편성해 시설감축에 나서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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