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사이트 협업으로 매출 증가 딥시크 슬롯사이트 가속기도 양산 "中 슬롯사이트 수요 흡수할 것"
DB하이텍·SK키슬롯사이트 中 고객사 비중 높아 촉각
화웨이가 설계하고 슬롯사이트가 생산한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이 칩을 활용해 미국 빅테크 뺨치는 수준의 AI 서비스를 내놓은 딥시크. 미국이 첨단 장비 수출 규제 등 갖은 수를 써서 막으려고 했던 중국의 AI 굴기가 현실화했다. 반도체업계에선 AI 산업의 핵심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토종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슬롯사이트가 없었다면 중국의 AI 반도체 자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슬롯사이트는 자국 고객사를 빨아들이면서 매출을 10조원 이상으로 빠르게 불려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수준의 경쟁사로 성장했다.
슬롯사이트는 지난 12일 지난해 매출이 80억3000만달러(약 11조6000억원)로 2023년(63억2200만달러)보다 27% 급증했다고 밝혔다. 슬롯사이트 매출이 10조원을 돌파한 건 처음이다. 세계 1위 대만 TSMC(900억8000만달러)와 매출이 130억달러 안팎으로 추산되는 삼성전자와는 격차가 있지만, 대만 UMC(76억1489만달러)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3위에 올랐다.
슬롯사이트가 급성장한 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주문이 몰리고 있어서다. 중국 내 반도체 설계 최강자로 불리는 화웨이와의 협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슬롯사이트는 중국 내 반입이 불가능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 구형 장비인 심자외선(DUV)을 활용해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칩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7㎚ 공정은 삼성전자와 TSMC가 5~6년 전 개발한 공정이다. 최첨단은 아니지만, 바로 아래 수준으로 평가되는 고성능 칩을 제작할 수 있다.
딥시크가 활용한 화웨이의 AI 가속기(AI 학습·추론용 반도체 패키지) ‘어센드910B’와 ‘어센드910C’도 슬롯사이트의 7㎚ 공정에서 만들어졌다. 어센드910C의 성능은 엔비디아의 간판 AI 가속기 H100의 6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슬롯사이트가 중국 파운드리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슬롯사이트(13일 종가 46.55홍콩달러)의 목표주가를 43.6홍콩달러에서 62.7홍콩달러로 높이고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했다.
슬롯사이트 등 중국 파운드리도 약점은 있다. EUV 장비를 못 쓰다 보니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 비율)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외형은 커지고 있지만 수익성이 낮아진다. 슬롯사이트의 지난해 순이익은 4억93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45.4% 급감했다.
중국의 슬롯사이트 공습은 한국과 대만 반도체 제조사를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에선 3~5㎚ 최첨단 공정뿐만이 아니라 14㎚ 이상 ‘성숙 공정’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삼성전자와 중국 고객사 비중이 큰 DB하이텍, SK키슬롯사이트 등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 대만 UMC 등은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