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찔움찔, 어린 조카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 조금씩 벽을 잡으면서 일어섰다. 얼마 뒤에는 한 발씩 발을 떼고 걷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그 모습에 모두 환호했고,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그날 그 첫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내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그 어린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서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며 겪은 성장과 변화, 인간이 걸어온 길에 대한 농축된 서사를 읽었다. 인간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걸이를 탐색하는 건 인류학에서는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인류의 조상이 지금의 인류처럼 걸었는지에 대한 논제는 여전히 의미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인류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못지않게 ‘걷기’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 또 한 부류가 있다. 춤추는 사람들, 특히 슬롯 머신 프로그램(tango)를 추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라고 부르지만,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땅고’라고 부른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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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우러 간 첫날, 강사는 우리에게 한번 걸어보라고 요청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탱고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몰랐던 그때, 나는 나름대로 내가 아름답고 생각하는 그런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걸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슬롯 머신 프로그램걸이란 발레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것이었다. 고관절을 열어 턴아웃을 하고, 발끝은 푸앵트(포인트) 상태로, 무릎을 쫙 펴서 뻗고, 상체는 갈비뼈를 닫고 하늘로 향해 풀업하고, 어깨는 내리고 목은 길게, 코에 눈이 있다고 생각하며 걷는 그런 슬롯 머신 프로그램. 17세기 프랑스 왕궁에서부터 19세기 러시아 고전발레 시대를 거쳐 완성된 그런 슬롯 머신 프로그램.

실제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는 오로지 무용수들이 걷는 것만슬롯 머신 프로그램 이뤄진 작품이 있기도 하다. <데필레 뒤 발레(Défilé du ballet), 발레의 행진, 혹은 퍼레이드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파리오페라발레학교의 학생들과 발레단의 군무진부터 수석무용수인 에투알까지, 무용수들이 차례로 행진하듯이 걸어 나와 인사를 하는 것슬롯 머신 프로그램 이뤄져 있다. 1926년 바그너의 <탄호이저 행진곡에 맞춰서 처음 선보였던 이 행진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1947년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트로이 행진곡에 맞춰 다시 무대에 올랐고, 현재는 매해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시즌 오프닝 공연 때 선보이는 전통이자 레퍼토리가 되었다. 오로지 걷는 것만슬롯 머신 프로그램 작품이 되는 것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마음과 무용수들의 걷는 모습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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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필레 뒤 발레(Défilé du ballet) 2014년 / 사진출처. © Paris Opera Ballet
2014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 퍼레이드 피날레 / 사진출처. © Paris Opera Ballet
2014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 퍼레이드 피날레 / 사진출처. © Paris Opera Ballet
탱고를 처음 배울 때 내게는 그 퍼레이드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가장 아름다운 슬롯 머신 프로그램걸이였다. 하지만 에투알이 된 것처럼 환상에 취해서 걷고 있던 내게 들려온 건 뜻밖의 반응이었다. “턴아웃 하지 마세요! 똑바로 걸으세요!” 지금 이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똑바른’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아니었던 건가? ‘턴아웃은 18세기부터 움직임의 가용 범위를 넓히며, 무용과 발레의 기술을 발달시키고 확장한 가장 중요한 자세로서…’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논리와 변명이 지나가고, 이 슬롯 머신 프로그램과 턴아웃의 아름다움과 유용함을 증명하겠다는 듯 한동안 나는 이 자세를 고칠 수가 없었다. 아니, 나는 이 자세를 바꿀 마음의 자세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탱고에서는 어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탱고를 시작하고 몇 개월 정도 지났을 때, 2023년 탱고 세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커플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호기심에 특강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고맙게도 그들은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 나에게 성의 있는 클래스를 진행해 주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나의 다리를 잡고 계속 풀어주면서 “자연스럽게!”를 강조한 점이다. 여러 탱고 강사들이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걷기를 알려주지만 공통적으로는 이렇다. 한 다리에 무게중심을 실은 상태에서 다른 쪽 다리를 앞이나 혹은 뒤로 뻗고, 상체는 높이의 변화 없이 그대로 밀어서 몸의 축과 무게중심을 아까 뻗어서 움직인 다리 쪽으로 옮겨간다.

이렇게 걷기 위해서 몸의 축을 세우고 바로 서는 것은 선결과제이며, 한국무용의 디딤처럼 땅을 굳게 밟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연습한 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파트너와 만나 안고 걸으면서 완성된다. 탱고는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추는 춤이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 즉 탕게라(tanguera, 탱고를 추는 여성)와 탕게로(tanguero, 탱고를 추는 남성)가 함께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과학적·미적 원리를 몸으로 발현시킨다. 그래서 탱고에서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만으로 춤이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음악 안에서 서로 안고 제대로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탱고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고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걷는 게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데필레 뒤 발레가 그렇듯이 걷는 것 자체가 작품이다. 전자가 나와 관객의 인사라면, 탱고는 나와 파트너, 그리고 음악과의 인사이다. 탱고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서 자연스러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춤 언어이다.
2023년 슬롯 머신 프로그램 세계 챔피언십 슬롯 머신 프로그램 피스타 부문 챔피언 Suyay Quiroga & Jonny Carvajal / 사진출처. © Castelar Digital
2023년 슬롯 머신 프로그램 세계 챔피언십 슬롯 머신 프로그램 피스타 부문 챔피언 Suyay Quiroga & Jonny Carvajal / 사진출처. © Castelar Digital
2023년 슬롯 머신 프로그램 세계 챔피언십 슬롯 머신 프로그램 피스타 부문 챔피언 Suyay Quiroga & Jonny Carvajal / 사진. © Federico López Claro/Clarín
2023년 슬롯 머신 프로그램 세계 챔피언십 슬롯 머신 프로그램 피스타 부문 챔피언 Suyay Quiroga & Jonny Carvajal / 사진. © Federico López Claro/Clarín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 입문한 지 1년 반. 돌이켜보니 춤을 배우겠다고 하면서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은 들어올 틈이 없게 문을 꽉 닫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다. 이전에 아름답다고 믿었던 것들과 익숙한 것들을 내 몸에서 비워내는 것이 춤을 배우는 첫 번째 단계이자 자세가 아닌가 싶다. 발레를 배우면서는 중력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며 내가 사람이란 사실을 잊고 공기의 정령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배우면서는 땅과 나의 접촉을 통해 사람이란 정체성과 땅에서 나와서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근원을 계속 상기시킨다.

아직까지도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몸에 착 달라붙지 않아서 불쑥불쑥 나도 모르게 턴아웃을 하고, 종종 발은 땅을 누르지 않고 하늘로 향하기도 한다. 발레와 슬롯 머신 프로그램 클래스를 오갈 때마다 중력과 멀어졌다 친해졌다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이것도 저것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중립적인 몸”이 될 거라 믿기도 한다.

좀처럼 탱고의 걷기와 춤이 늘지 않아 의기소침한 가운데 얼마 전 바로크미술 작품들의 전시에서 작품 하나가 내게 큰 응원이 되었다.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Orazio Lomi Gentileschi, 1563~1639)의 1615년 작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시작하는 아기 예수와 성모, 수많은 작품 중에서 유독 그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신이 인간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세상에 내려온 존재이다. 내가 직접의 네가 되어 너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고 너를 껴안겠다는 마음으로, 신이 인간의 생로병사를 직접 겪음으로써 기독교의 근본원리인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림은 신이 어린 아기가 되어 한 발씩 어설픈 슬롯 머신 프로그램걸이를 떼고 있는 순간을 담고 있었다. 신도 똑바로 걷지 못하는 그 단계를 거쳐 자신의 사랑에 닿고자 하는데 하물며 사람인 내가 똑바로 걷지 못하는 게 뭔 대수일까. 예수를 한 명의 성인(聖人)으로 보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이든 성인이든 그 위대한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시작은 한 발씩 떼는 저 슬롯 머신 프로그램걸이에서부터였다. 그 그림은 내게 그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마침 그림의 영어 제목에는 ‘first steps’라고 적혀 있었다.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예수와 성모 alt=, (1614-1615년경), 캔버스에 유채, 58 x 64cm, 베를린, 개인 소장품 ">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시작하는 아기 예수와 성모, (1614-1615년경), 캔버스에 유채, 58 x 64cm, 베를린, 개인 소장품
‘걷는다’는 말은 용감하다. ‘함께 걷는다’는 말은 따뜻하다. 용감하게 탱고에 문을 두드려 한 발 내딛고,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따뜻하게 걷는 게 탱고가 아닐까 싶다. 지금 탱고에서 나의 걷기는 ‘걸음’이 아니라 ‘슬롯 머신 프로그램’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법하다. 그러니까 오늘도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걸음이 될 때까지, 걸음이 탱고가 될 때까지.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