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가 배석한 가운데 ‘상호파라오 슬롯’ 부과를 지시하는 지침(메모랜덤)에 서명하고 있다.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는 오는 4월 1일까지 각 부처 조사를 마무리하고 이후 파라오 슬롯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가 배석한 가운데 ‘상호파라오 슬롯’ 부과를 지시하는 지침(메모랜덤)에 서명하고 있다.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는 오는 4월 1일까지 각 부처 조사를 마무리하고 이후 파라오 슬롯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서명한 ‘상호파라오 슬롯’ 지침은 대미 무역흑자국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흑자를 내는 국가에 대해선 파라오 슬롯는 물론 부가가치세, 환율, 규제 등 파라오 슬롯 외 요인까지 미국산 제품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움직임, 망 사용료 부과, 신약 가격 규제 등 과거 미국 재계가 문제 삼았던 한국의 제도와 법률도 걸고 넘어질 가능성이 있다.

◇ 파라오 슬롯 온플법도 도마 오르나

파라오 슬롯 무기로 對美흑자국 무차별 압박…"한국 등 동맹도 우리 이용"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지침과 백악관 고위 관계자의 발언에서 거론된 사례는 모두 미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큰돈을 기부하며 구애해 온 빅테크의 흔적이 적잖이 눈에 띈다.

대표적 사례가 유럽과 캐나다의 디지털서비스세를 거론한 대목이다. 백악관은 이날 배포한 자료에서 “오직 미국만이 미국 기업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어야 하지만 교역 상대국들은 미국 기업에 디지털서비스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이런 비상호적 세금으로 미국 기업들에 연간 2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빅테크가 전 세계 파라오 슬롯자로부터 수익을 내고 있지만 온라인 플랫폼 특성상 해외 각국엔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외면한 것이다.

미국 자동차 수출을 어렵게 하는 각국의 인증제도나 환경관련 규제도 트럼프의 타깃이다. 특히 유럽의 까다로운 환경 규제는 상호파라오 슬롯 부과의 근거가 될 여지가 크다.

미국은 대미 무역흑자국을 중심으로 상호파라오 슬롯를 부과할 계획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중국 공산당 같은 경쟁자든,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같은 동맹이든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을 콕 찍어 언급한 만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을 봐줄 가능성은 낮다.

업계에서는 파라오 슬롯이 도입하려고 하는 온라인플랫폼법 등에 대한 철회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본다. 앞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는 청문회에서 파라오 슬롯 온플법과 관련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구글과 쿠팡 등 미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발언이다.

의약품도 미국이 줄곧 문제 삼아온 분야다. 한국의 약가 정책이 혁신 신약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재계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이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은 망사용료법(전기통신사업법)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화평법(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지리정보 반출 금지 조치 등도 미국이 문제 삼아온 비파라오 슬롯 조치다.

◇ 이르면 4월부터 파라오 슬롯 부과

미국이 어떤 식으로 상호파라오 슬롯를 매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비파라오 슬롯 조치를 파라오 슬롯율에 넣는 환산 공식은 국제적으로도 없지만, 미국이 반도체나 자동차와 같은 대미 흑자 폭이 큰 품목에 추가 파라오 슬롯를 매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상호파라오 슬롯와 관련해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백악관 당국자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교역 환경이 얼마나 불균형한지 대화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각 나라가 파라오 슬롯를 내리고 싶다면, (미국도) 파라오 슬롯를 내리겠다는 의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각국과 적절한 협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상호파라오 슬롯 부과가 미뤄지거나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상호파라오 슬롯 부과를 위해 어떤 규정이 사용될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날 지침에서는 관련법이 명시되지 않았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리안/하지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