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혹은 뱀파이어 또는 바카라 꽁 머니로 불리는 존재는 아일랜드의 작가 브람 스토커가 1897년 소설 '드라큘라'를 발표한 이후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도 이미지상으로 주는 인상이 워낙 강렬한 탓에 원작 소설 발표 당시 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에 적합한 소재로 주목받았다. 그에 대한 근거로 <바카라 꽁 머니(1922)와 <드라큘라(1931)와 <뱀파이어(1932)가 차례로 영화화되며 이후에도 많은 이가 찾아보는 고전의 지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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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W. 무르나우 감독의 영화 <바카라 꽁 머니(1922) 스틸컷 / 출처. 다음영화
언급한 작품 중 주목하고 싶은 영화는 독일의 F. W. 무르나우 감독이 연출한 <바카라 꽁 머니다. 드라큘라 최초의 영화이면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한 동명 영화를 2024년에 만들었고, 국내에 2025년 1월에 개봉해서다. 말하자면, 최신작 <바카라 꽁 머니는 원작 영화를 100여 년 만에 (정확히는 102년) 다시 만든 셈이다. 무르나우의 <바카라 꽁 머니가 담고 있는 주요한 설정과 메시지가 이 시대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다. 더 근본적으로는 브람 스토커가 창조한 존재의 상징이 여전히 유효할 정도로 초월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리메이크된 <바카라 꽁 머니는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다. 낮에는 관 속에 잠들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하는 ‘바카라 꽁 머니’ 올록 백작이 깊은 산 속의 성 밖으로 나와 도시로 향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제물로 삼아 이 도시를 어둠이 지배하는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 생각이다. 욕망이 이성에 앞서는 존재여서일까, 이 여인에게 너무 반한 나머지 새벽이 오는지도 모르고 피를 빨아 먹으며 사랑을 나누다 빛에 노출되어 껍데기만 남는 처지로 전락한다. 죽음이 뒤덮였던 도시에는 다시 생명이 피어나고 쥐들이 들끓던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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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영화 <바카라 꽁 머니(2024)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선과 악이, 낮과 밤이, 백과 흑이, 생과 사가 교차하는 이미지가 절대적인 무르나우의 <바카라 꽁 머니는 그래서 '표현주의’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풍경을 경유하여 당대 사회가 처한 혼란과 그 속에서 불안해하는 인간의 내면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표현주의는 1900년대 초반 독일에서 발전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며 세상은 급변했고, 독일의 특수한 사정, 즉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앞두고 내부의 정치적인 불안정이 사회를 어둡게 만들면서 이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예술에 반영되어 표현주의가 주목받았다.

선두에 선 작품이 바로 <바카라 꽁 머니이었고 그중 이미지가 남긴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올록 백작이 사는 성과 주변의 형태는 과장됐고, 흑백 필름으로 전달되는 핏빛은 붉은색이 아니어서 대담했고, 뾰족한 연필심으로 그려 넣은 듯한 도시의 풍경은 날카로웠고, 이 모든 공포의 조건을 외형화한 바카라 꽁 머니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에 등극했다. <바카라 꽁 머니의 올록은 검은 망토를 두른 호감형의 중년남성으로 스테레오타입화된 오늘날의 드라큘라와 많이 달라서 회반죽의 살이 붙은 해골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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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W. 무르나우 감독의 영화 <바카라 꽁 머니(1922) 스틸컷 / 출처. 다음영화
이를 연기한 배우는 맥스 슈렉이다. 하얀 피부의 민머리에, 검은 의상에, 굽은 등에, 뾰족한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에, 에드바르드 뭉크의 그림 '절규'의 비명 지르는 사람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 <바카라 꽁 머니의 올록 연기가 얼마나 완벽했던지 맥스 슈렉은 그만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감옥에 평생을 갇혀 그럴듯한 배역을 맡지 못하고 배우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그럴 정도로 당시 대중에게 바카라 꽁 머니 연기는 드라큘라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져서 맥스 슈렉의 이름 또한 공포의 존재로 각인되었다.

<바카라 꽁 머니의 전통을 따르는 리메이크작 또한 기존의 드라큘라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인다. <그것(2017)의 '광대’ 페니와이즈, <더 크로우(2024)의 '까마귀’ 에릭 등 그로테스크한 변신에 일가견을 보이는 빌 스카스가드가 연기한 올록은 온몸이 썩어들어가는 좀비의 형태에 더 가깝다. 바카라 꽁 머니가 다른 지점이 있다면 몸에 난 상처의 성격이다. 좀비처럼 무언가에 공격을 받았다기보다 몸 안에 균이 침투해 그 여파로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몸 밖으로 두드러지는데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의도는 '전염’에 있다.

원작도 그렇고, 리메이크작도 <바카라 꽁 머니는 전염의 시대에 맞닥뜨린 공포를 은유한다. 원작 영화가 발표됐던 1922년을 전후해 스페인 독감(1918~1920)이 유행하며 5천만 명 넘은 사상자를 기록, 전 세계는 전염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또한,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후반기와 맞아떨어지며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일상화되며 주변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무르나우 감독은 전염과 공포의 시대를 은유할 수 있는 <드라큘라에 주목했고, 다만 판권을 확보할 수 없어 '흡혈귀’를 의미하는 루마니아어 '바카라 꽁 머니’를 가져와 작품을 만들었다.
F. W. 무르나우 감독의 영화 <노스페라투>(1922) 스틸컷 / 출처. 다음영화
F. W. 무르나우 감독의 영화 <바카라 꽁 머니(1922) 스틸컷 / 출처. 다음영화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오랫동안 휴전 상태인 듯 겉보기에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처럼 지구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소요 사태가 벌어지며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바카라 꽁 머니는 코로나19로 인한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의학의 엄청난 발바카라 꽁 머니도 신속한 대처를 하지 못해 700만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한 정신적, 물리적 피해는 여진으로 남아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눈 밝은 창작자라면 이에 대한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 작품에 반영하는 건 의무와 같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100여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바카라 꽁 머니를 주목해 리메이크하기에 이르렀다. 극 중 바카라 꽁 머니의 외형이 바뀌고 컬러로 작업한 까닭에 붉은빛이 선명해지는 등 원작과 달라지기는 했어도 전체적으로 무르나우의 작품에 충실한 건 굳이 큰 변화를 주지 않아도 지금과 1920년대의 당대의 시대상이 다르지 않아서다. 그렇게 <바카라 꽁 머니는 부활(?)했고 리메이크를 통해 역사처럼 영화 또한 반복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허남웅 바카라 꽁 머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