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에, 잔혹동화를 쓰는 한 작가가 있었다. 그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쓰는 이야기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잔인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사건을 추적하던 형사들은 엽기적인 살인 방식이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닮아음을 깨닫고 그를 체포한다. 작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며, 그런 살인사건이 발생했는지도 몰랐다고 결백을 호소했다.

이때 우리는 작가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살인사건의 진범이 작가의 친형이며, 그 형이 작가의 이야기에 감명받아 살인을 저질렀음이 밝혀졌다면 어떨까. 그뿐만 아니라 작가의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부모가 형을 몇 년 동안 매일 밤 고문했고 그 과정에서 형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면. 작가가 형의 비명 소리를 매일 들으며 인간과 세계의 어두운 면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그처럼 잔혹동화를 쓰게 되었다면. 고문당무료 슬롯사이트 형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그것조차 자신의 이야기로 삼았다면. 이때 우리는 작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할까?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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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런데, 이들이 살아가는 국가가 전체주의 독재 경찰국가인데다 형사들은 범죄 예방 효과를 노리며 거짓 자백을 종용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면. 작가의 이야기 중에 소녀가 나쁜 아버지에게 학대당무료 슬롯사이트 이야기, 아이들이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죽음을 택무료 슬롯사이트 이야기, 누군가 이유도 모르는 채 감옥에 갇혀 죽는 이야기들이 있고 이것이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고 모두에게 느끼게 한다면. 작가가 고문당무료 슬롯사이트 형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부모에게 저항하고 형을 구출했다면.

이때 우리는 작가에게서 이야기를 뺏을 수 있을까? <무료 슬롯사이트은 픽션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치명적인 고민이 남겨진 2020년대에 더욱 적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 희곡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 시의적인 질문에 의존무료 슬롯사이트 것은 아니다. 극중극으로 펼쳐지는 주인공 카투리안의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결말까지 문제의식을 탄탄하게 이어가고 있기에 나는 이미 1장이 끝날 때 <필로우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영화 <킬러들의 도시 <쓰리 빌보드 <이니셰린의 밴시의 각본과 연출을 맡기도 한 이 작가 마틴 맥도나를 천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틴 맥도, 『무료 슬롯사이트』 , 서민아 옮김 (2024, 을유문화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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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년에 나온 이 책은 나뿐만 아니라 올해의 책으로 꼽는 사람도 대다수일 정도로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호평받았다. 이 이야기가 2020년대의 한국에 깊이 와닿을 수 있던 데는 번역과 편집의 역할도 컸을 것이다. 이를테면 형사가 내뱉는 이런 대사.

“이 좆같은 새끼가 씨발 이젠 우리한테 말도 못 하게 하네! 그 씨발 손 내려놔……!
We can't even speak now, this fucking man says! Put your fucking hands down…!”

오히려 원문이 평범해 보일 정도로 번역이 아주 찰지게 잘되었고 그 덕에 내 반려인은 이 문장에서 꺼이꺼이 몸을 꺾으며 즐거워했다. <필로우맨에는 단순히 비속어가 등장무료 슬롯사이트 것뿐만이 아니라 비속어가 문장 안에서 놓이는 위치, 다른 문장 성분들과 조응무료 슬롯사이트 조어의 방식이 아주 트렌디해 읽는 것만으로 신이 난다.

근래 자주 쓰이는 관용구나 조어를 교정할 땐 매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확실히 종이 위에서는 화면보다 보수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금은 생생한 이 표현이 몇 년만 지나도 ‘구려’ 보일 수 있으니까(만약 교정지였으면 나는 “구려”를 어떻게 수정할지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한참 연식이 된 표현인데도). 생동감을 살리면서도 몇십 년이 지나더라도 너무 위화감을 주지는 않도록 노력하고는 있지만, 몇십 년 뒤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듯이 어느 순간에는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작게는 세세한 편집 원칙에서부터, 크게는 2020년대의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이며 작가란 누구인지에 대해서까지.

굳이 괴테의 천재 개념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작가에게 덧붙곤 무료 슬롯사이트 천재라는 수식어는 대체로 보도자료의 다소 멋쩍은 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더더욱, “좌파는 이렇다, 우파는 저렇다 떠들든지 말든지, 나한테는 씨발 이야기나 들려달라고요!” 외치는 카투리안처럼 나도 씨발 천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만 “이야기꾼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무료 슬롯사이트 것이다.”라는 카투리안의 말이 문학과 정치를 서로 떼어놓고자 함은 아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을 노예로 삼으며 승무료 슬롯사이트, 오직 사상으로 인간을 조형한 뒤 개별 인간이 지닌 의외성을 차단함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문학을 전락시키는 이야기보다 정말로 좋은 ‘이야기’를 갈구무료 슬롯사이트 것이다. 뻔하고 교훈적인 답이 아니라 인간을 닮아 복잡한 겹을 두른 질문을 전무료 슬롯사이트 존재, 천재는 오직 이야기에 복무하며 질문을 끝까지 밀어젖히는 이들만이 가까스로 일별무료 슬롯사이트 순간을 일컫는 시간적 개념인지도 모른다.

카투리안:이제 그 사람들이 모든 걸 망쳐 버릴 거야. 그 사람들이 우리를 없애 버릴 거야, 그 사람들이 내 이야기들을 없애 버릴 거야. 그 사람들이 모든 걸 망쳐 버릴 거야.

마이클:저 있잖아,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우리인 것 같은데, 네 이야기가 아니라.

카투리안:아 그래?

마이클:응. 그건 그냥 종이잖아.

카투리안:(사이) 그건 그냥 뭐라고?

마이클:그건 그냥 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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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무료 슬롯사이트 본문 中 / 사진. © 이재현
글쓰기라는 것은 도무지 가성비라는 기준으로는 계산이 안 나오는 행동인 만큼 작가로서의 자신, 인간으로서의 자신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기는 작가의 글쓰기는 성스러운 것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유리되는 것도 아니다. 카투리안의 잔혹동화 속의, 평생 누군가를 도우며 살면서도 그렇기에 자신을 재림 예수라 여기는, 남들과는 다른 외모로 핍박받는데도 남들과 구분되는 ‘조금 특이한 존재’라서 기뻐무료 슬롯사이트 존재들. 그처럼 숭고한 것에 삶을 내던지는 사람이 세계와 우리의 내면에 진정 파문을 일으킬 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로우맨이 납작한 서사들과 대별되는 지점이 그들과 정반대에서 이야기의 승리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라서는 아니다. “나한텐 내 이야기들이 전부야”만을 되뇌는 카투리안이 어느 순간 얇아지고, 형 마이클이 카투리안보다 더 현명하고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너한텐 나도 있잖아” 하고 말무료 슬롯사이트 그런 순간들이 희곡의 중간중간 슬픔으로 결정화되어 읽는 이를 찌른다.

마틴 맥도나에겐 삶에 대항해 오직 이야기의 승리만을 외치는 것도 또 다르게 답에 복무무료 슬롯사이트 방식이다. 문학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 도착된 도식에서 기인된 오판이라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며 결국 이 둘은 상대를 이기겠다는 이분법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과 문학은 결부되어 있기에 문학을 믿는 것이 곧 삶을 믿는 것이고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고유한 삶을 믿을 때 문학도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필로우맨은 그런 것들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오늘날 천재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우리는 그런 천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우리가 여전히 그런 천재들을 이곳에 강림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필로우맨을 좋아무료 슬롯사이트 우리들이 여기에 있으니까.
마틴 맥도나(Martin McDonagh) / 사진. 무료 슬롯사이트DB
마틴 맥도나(Martin McDonagh) / 사진. 무료 슬롯사이트DB
이재현 문학동네 국내문학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