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슬롯사이트 지니 선언에도… 노조들 소급청구 소송 나서는 이유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한 새로운 법리를 전면적으로 소급 적용하면 종전 판례를 신뢰하여 형성된 수많은 법률관계의 효력에 바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신뢰보호에 반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함으로써 변경된 판례 법리의 소급효를 제한하였다(원칙적 슬롯사이트 지니). 다만 이 사건 및 이 판결 선고 시점에 이 판결이 변경하는 법리가 재판의 전제가 되어 통상임금 해당 여부가 다투어져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들(병행사건)에 한해서는 구체적 사건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법의 본질상 새로운 법리를 소급 적용한다고 선언하였다(병행사건에 대한 예외적 소급효).

이에 따라 병행사건이 아닌 한 변경된 판례법리는 판결 선고일인 2024년 12월 19일 이후 제공한 연장근로 등에 대한 법정수당을 산정할 때부터 적용되고, 2024년 12월 18일까지 제공한 연장근로 등에 대한 법정수당 산정 시에는 기존 판례 법리가 적용되게 되었다. 위와 같은 판시는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하되 병행사건 여부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함을 선언했다고 하여 ‘선택적 슬롯사이트 지니’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런데 최근 한 대기업 노동조합은 원고 2만명을 모아 통상임금 소급분 지급 청구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동종 산업의 다른 노동조합 역시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어 이런 소송은 확대될 조짐이다. 대법원은 분명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하였는데 왜 이런 소송이 제기되는 것일까? 슬롯사이트 지니 판시가 그만큼 낯설고 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소수이긴 하지만 이전에도 법적안정성을 위해 새롭게 선언된 판례변경의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한 대법원 판례들이 있었다. 대법원은 2005년 종중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던 종래 관습법이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함을 선언하면서 법적 안정성과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위해 판례 법리의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하였고, 2008년에는 민법 제1008조의3의 제사주재자를 결정하는 방법에 관한 판례 법리를 변경하면서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하였다. 2015년에는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임을 선언하면서 ‘향후의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하여 변경된 판례 법리의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법이론적 관점에서는 위와 같은 판시는 여전히 어색하다. 법원은 입법자가 아닌 법의 적용자이고, 법원의 판례는 엄밀히 말하면 법이 아니라 개별 사건에 대하여 법원이 법 해석 및 적용을 한 결과다. 즉, 판례 변경은 기존의 법해석을 변경하는 것이므로 새로 변경된 판례는 그 전의 사건에 대하여도 슬롯사이트 지니 적용된다. 그러한 법원의 해석·적용이 이전에 발생한 사실관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법원의 역할, 더 나아가서는 삼권분립의 원칙과도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처럼 법리적 근거가 의문스러움에도 대법원은 선택적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하였다. 대법원이 같은 판결에서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에서 제외하였음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쉽지 않다.

물론, 대법원이 판례법을 통해 입법작용을 하는 보통법(Common law) 국가의 방법론을 참고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법 체계가 다른 국가의 방법론을 빌려 오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미국 연방대법원 조차 과거에는 ‘장래적으로만 적용하는 판례를 선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현재는 ‘슬롯사이트 지니만을 가지는 판례는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태도를 정리한 바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당해사건(및 병행사건)에서만 슬롯사이트 지니효를 인정하고 그 외 사건에는 슬롯사이트 지니효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할 여지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같은 종류의 사건에는 같은 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거의 같은 시점에 발생한 두 사건에 대해 법원에 계류 중이었는지 여부에 따라 다른 판례를 적용한다면 불합리성에 대한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론적 차원을 넘어 과연 실제로 대법원이 슬롯사이트 지니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슬롯사이트 지니 선언이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려면 이에 반하는 하급심이 선고되는 것을 실제로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상 판례는 그 자체로는 법규범이 아니며, 선례구속(stare decisis)도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판례 자체에는 법적 구속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하급심 법원이 소급효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 물론 하급심 법원이 판례에서 이탈하였을 때 당사자는 최상급심인 대법원까지 상고를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대법원은 판례에 따라 파기·자판 혹은 파기·환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하급심 법관에게는 판례를 따를 의무가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나아가 패소한 당사자가 상소를 하여 대법원까지 사건이 오게 되더라도 대법원이 ‘슬롯사이트 지니 선언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하급심 판결을 파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특히 향후 대법관의 인적 구성이 변경된다면 슬롯사이트 지니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이와 다른 취지의 판결이 선고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제기된다.

대법원이 선언한 슬롯사이트 지니의 취지에 반하는 것임에도 소급분 청구 소송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위와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 일단 대법원이 법적안정성과 신뢰보호를 위해 슬롯사이트 지니를 선언한 만큼 대법원 판례에 대한 노동현장 당사자들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슬롯사이트 지니 선언은 관철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위와 같은 소송이 제기되려는 것을 보자면, 그와 같은 법적안정성과 신뢰보호가 보장되는데까지는 여전히 많은 진통이 따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