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선거 슬롯 꽁 머니 기술
미국에선 치열한 슬롯 꽁 머니전에서 촌철살인으로 판도를 흔든 사례가 많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상대인 스티븐 더글러스가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고 하자, “다른 얼굴이 있다면 못생긴 얼굴을 들고나왔겠나”라고 했다. 더글러스는 할 말을 잃었고, 링컨은 큰 점수를 땄다.

미국에서 1960년 도입된 TV슬롯 꽁 머니 위력은 대단했다. 그 해 43세 존 F 케네디는 “이번 주 빅뉴스는 정치가 아니라 야구왕 테드 윌리엄스가 나이 때문에 은퇴한다는 소식이다.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산증거다” 등의 유머와 젊고 박력 있는 이미지로 리처드 닉슨을 꺾은 건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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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대선 때 “4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나” “경기회복은 지미 카터 씨(당시 대통령)가 일자리를 잃을 때”라는 기발한 말로 판세를 반전시켰다. 4년 뒤 월터 먼데일 후보가 레이건의 고령을 문제 삼자 “먼데일 후보가 젊고 경험 없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진 않겠다”고 받아친 것도 유명하다. 미국 TV슬롯 꽁 머니도 종종 ‘진흙탕싸움’이란 혹평이 나오지만, 일대일 승부로 박진감을 더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은 어떤가. 대선 TV슬롯 꽁 머니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대선 때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당시 62세)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73세)에게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하자 김 후보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나이도 만만찮다”고 대꾸하면서 슬롯 꽁 머니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물론 어려서부터 슬롯 꽁 머니 훈련을 하고 청중이 웃지 않으면 실패한 연설로 치부하는 미국과 엄숙·근엄한 한국의 정치문화를 단순 비교하긴 무리다. 그러나 모든 후보가 등장해 중구난방 진행되는 우리의 슬롯 꽁 머니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제 여야 대선 후보 4명이 참여한 TV슬롯 꽁 머니이 열렸다. 후보들은 자유 주제, 외교·안보, 일자리·성장 등 세 분야로 나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120분간 진행된 슬롯 꽁 머니에서 후보들의 국정운영 능력과 자질 등을 속속들이 알기엔 부족했다. 1인당 질문·답변 시간은 주제별로 5분, 7분씩으로 나뉘어 총 26분에 불과했다. 번번이 말이 끊기고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전해주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 앞으로 남은 이런 다자슬롯 꽁 머니 세 차례로는 부족하다. 기계적인 균형에서 벗어나 양자 끝장슬롯 꽁 머니 등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줬으면 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