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같은 삶 속, '푹 잠'을 위한 수면 슬롯 머신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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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희윤의 팝 에포크인생은,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다. 꿈처럼 살고 싶은데 꿈처럼 살아지지 않으니 ‘몽(夢)’으로 치면 최고로 악질, 제대로 ‘악한(나쁜)’ 부류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리히터, 그리고 꿀잠의 미학
꿈처럼 사는 법이 있다. 꿈을 자주 꾸는 거다. 그러니까, 잠을 자주 자는 것! 싱겁기가 아주 가성비 높은 분식집의 셀프 바에 비치된 무료 장국 수준이라고? 진심이다. 잠을 충분히 자야 재미난 꿈도 꿀 수 있고, 현실로 돌아와 ‘완충’된 기분과 체력으로 훨훨 날 듯 활동할 수 있다.
클래식이라면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후진(後進) 슬롯 머신 프로그램 정도나 잘 알던 그 당시의 나는, 대학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한 클래식 마니아 지인의 손에 이끌려 팔자에 없는 국내 유명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에 갔다. 그날의 연주곡목은 ‘골드베르크 변주곡’. 일단 프로그램에서 감이 왔다. ‘1시간 동안 변주만 하니까 엄청나게 흥미진진하겠군. 거의 마일스 데이비스의 비밥 재즈 같은 거 아냐? 변주의 극한!’
그러나 내용은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1번 곡 ‘아리아’가 채 끝나기도 전, 격무에 노곤했던 나는 알파파의 폭풍우라도 때려 맞은 듯 깊은 잠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우레와 슬롯 머신 프로그램 박수 소리에 눈을 떠보니 공연 끝! 장내를 메운 눈물과 기립의 도가니탕 속에서 나 홀로 유체이탈의 무(無-)영혼 물개 박수만 몇 번 때리다 쓸쓸히 퇴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멍한 눈으로 녹색 창에 여덟 글자를 넣어 검색했다. ‘골.드.베.르.크.변.주.곡’.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저링크 백작이란 사람이 전속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골드베르크를 통해 요한 제바스티한 바흐에게 의뢰해 만든 곡이라고. 그러니까 이건 꿀잠을 위한 슬롯 머신 프로그램적 수면제였던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메운 관중 가운데 오로지 나만이 원곡의 의도에 맞는 참되고 진실된 감상을 한 것은 아닌가?’ 자문의 물음표는 시간이 갈수록 확신의 느낌표로 바뀌었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크리스토퍼 놀런의 ‘메멘토’의 마지막 반전을 본 듯한 충격의 소용돌이와 함께 그날 일상의 페이지를 닫고 잠들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Bach) - 골드베르크 변주곡_아리아(Goldberg Variation BWV 988_Aria)]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세상의 빛을 본 지 274년 뒤, 지구상에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또 하나의 청각적 슬롯 머신 프로그램 처방이 나온다. 바흐처럼 독일 출신인 영국인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앨범 ‘Sleep’이다. 아예 기획 단계부터 슬롯 머신 프로그램 과학자와 협업해서 현대인에게 적합한 슬롯 머신 프로그램 시간, 8시간 24분으로 앨범 길이도 맞췄다. 화룡점정은 그런데 콘서트다.
곧이곧대로 8시간 동안 연주하는데, 관객은 의자에 앉는 대신 주최 측이 미리 마련한 150~200개의 침대에 누운 채 감상하게 된다. 기네스북 도전이나 해외 토픽 등재를 위한 장난꾸러기 이벤트가 아니다. 영국의 BBC 라디오는 그해 ‘과학과 슬롯 머신 프로그램’ 주간에 맞춰 이 공연을 8시간 생방송으로 특별 편성했다. 투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프랑스의 필하모니 드 파리 같은 세계적 베뉴로 이어졌다.
[Max Richter - Sleep]
이 정도면 무덤에 누운 J.S. 슬롯 머신 프로그램도 무릎을 치며 깨어날 판이다. ‘내가 그때 변주를 200개 정도 더 만들어서 8시간으로 확대했어야 하는데…!’ 사실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노는 물이 좁았다. 1685년생 소띠 동갑내기인 헨델과 비교하면 속칭 그 ‘나와바리(구역)’ 차이가 극명하다. 글로벌 시각이 뛰어났던 헨델은 일찍이 영국으로 귀화해 왕의 총애를 받으며 이탈리아까지 넘나들었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평생 싱글로서 자유도 누렸다.
그런데 바흐는 어떤가. 무려 20명의 자녀를 부양하면서 교회에 복속돼 마감 시간에 맞춰 그때 그때 칸타타며 관현악곡을 조달하기 바쁘지 않았나. 그러니 사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네 아버지상(像)과 더 닮아 있는 건, 쿨한 SNS 인플루언서형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헨델보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아버지’ 바흐다.
그래도 바흐를 클래식의 대부로 만든 힘은 꿈의 힘 아닐까 한다. 평생을 너무 홀리(holy·神聖)하게 살며 신성로마제국의 독일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직접 유럽 대륙을 주유하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의 비발디, 프랑스의 쿠프랭의 악보를 필사하거나 연구하면서 가보지 못한 저 범구라파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꿈처럼 머릿속에 투영해 결국 자기 작품 안에 바흐화(化)해 집대성하지 않았나.
물론 고지식한 바흐가 헨델에게 처세술이나 세계관에 관해 ‘동갑내기 과외하기’라도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을 때도 있다. 그랬다면 바흐가 더욱더 자유롭고 파격적인 걸작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가끔은 한다. 하지만 바흐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되레 멈춰 있는 여행자, 달리지 않는 몽상가였기에 가능한 세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캐멀의 1984년 앨범 제목(‘Stationary Traveller’)처럼 말이다. 대위법, 평균율, 더 나아가 푸가의 복합적 건축물을 논리와 상상에 기반해 축조한 바흐의 세계는 단단한 현실에 기반한 꿈의 영토를 달렸기에 완성됐다.
바흐의 현실적 꿈이든, 매카트니의 잠 속 꿈이든 오늘의 결론은 별수 없다. ‘잘 자자!’ 좋은 꿈도 열심히 자다 보면 꾸게 되는 거고 현실의 꿈도 충분한 슬롯 머신 프로그램 시간에 기반한 활발한 뇌 활동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럼 오늘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 송(song)’으론 뭐가 좋을까.
4월에 내한하는 21세기 수면 슬롯 머신 프로그램계의 아이콘,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신보에서 골라 본다. ‘In Memory of a Dream’. 제목부터 적절하다. 부디 좋은 꿈 꾸시길. 꿈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부디, 기억도 하시길. 무엇보다 오늘 하루만큼은 ‘푹잠’ 주무시길. 꿈속에서도 인류 여러분께 기원해본다.
[Ludovico Einaudi - In Memory Of A Dream]
임희윤 슬롯 머신 프로그램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