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 '슬롯사이트사이트', 인간성과 진보의 관계를 묻다

[arte] 서정의 머나먼 나라의 책 읽기

이반 곤차로프의 (1859)

러시아 귀족적 생활양식이 만들어낸
잉여인간 '슬롯사이트사이트'

삶에 목적을 둔 진보적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며 변화하는 듯 했으나
다시 나태한 삶으로 돌아가

근대의 물결슬롯사이트사이트 과도기를 맞은
'슬롯사이트사이트 기질'의 극복 희망하게 해
슬롯사이트사이트 진보의 관계

소설의 4분의 1 분량인 1부가 다 끝나도록 주인공이 소파에 누워 절대 일어나지 않는 장편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 기질’이라 번역되는 '슬롯사이트사이트쉬나'라는 단어가 보통명사로 쓰일 만큼 19세기 러시아에서 하나의 ‘현상’이 된 작품이다. 이반 곤차로프는 이 작품을 1847년에 구상해 12년에 걸쳐 썼다. 1848년 「슬롯사이트사이트의 꿈」이라는 글이 문예지 『동시대인』의 <삽화가 있는 문학 컬렉션에 실렸고, 이는 완성본 소설의 일부를 이룬다.가족성에 대한 향수

일거수일투족에 “한껏 수선을 피울 때조차도 부드러움과 일종의 우아함을 잃지 않는 나태가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는 귀족이자 지주인 주인공 일리야 일리치 슬롯사이트사이트. 그는 걱정거리에 대한 해법을 찾기보다 “한숨”으로 해결하고 “무관심과 졸음 속에서 기력을 잃고” 마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학업을 겨우 마치고 관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지만, 애초에 그의 관리 생활의 전망은 어두웠다고 봐야 한다. 관리 업무를 “아버지가 했던 대로 수입과 지출을 공책에 쉬엄쉬엄 적어넣는 따위의 일 정도로 생각”했고, “한 관청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은 <... 화목하고 밀접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출근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지켜져야 하는 의무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 땅이 질거나 날이 덥거나 아니면 그저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는 구실로도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장관에 대해서도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항상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래서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그런 사람, 마치 제2의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으로만 슬롯사이트사이트는 믿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업무상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게 된 슬롯사이트사이트는 징계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귀가해 직장에 진단서를 보내는 것으로 관리 생활을 마무리한다.그는 하인 자하르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로호바야 거리에 살고 있으며, 좀처럼 침대나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신을 방문하는 몇몇 지인들을 잠옷 차림으로 맞이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수를 하는 일, 집 문턱을 넘어 외출하는 일은 그에게 비상한 결단을 요구하는 과업이다. 30대 초반의 슬롯사이트사이트는 좀처럼 연애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고 사교생활도 멀리하며 “남들이라면 늘그막에 가서야 애써 떠올리며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끼는 부드럽고 우수에 젖은 듯한 해맑은 추억들을 향해 <... 천천히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는 자주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에 빠지지만, 그것을 진전시킬 의지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할 의욕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영지 운영 상황의 악화, 임대 주택에서의 퇴거 위협 등도 그를 소파에서 움직이게 할 수 없다. 그는 지인으로부터 하루에 열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처리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그럼, 사람은 어떻게 하고?’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생활 방식으로는 인간성이 보존될 수 없다고 슬롯사이트사이트는 판단하는 것이다.
이반 곤차로프 &lt;슬롯사이트사이트&gt; 삽화. / 이미지출처. LiveJournal 홈페이지
슬롯사이트사이트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선조 때에 하던 파종 방식, 밭작물의 판로”를 그대로 답습했고, “무언가에 골몰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안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슬롯사이트사이트의 꿈」 장에는 이상향인 작은 마을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일리야 일리치는 “공기 중에도 물속에서도 숲속에서도 들판에서도 기적이 지배적이던 시절에 우리의 음유시인들에 의해 창조된 러시아적인 삶의 일리아드”를 자신 안에 깊이 새겨넣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세계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노인들이 “도저히 불가능한 나이까지 살다가 슬그머니 죽어갔고 조용히 손발이 굳어갔으며 아무도 모르게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수 마을에서 슬롯사이트사이트는 미리 준비된 채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규범을 지키며 할아버지대, 아버지대에 있어 온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고자 했다. 마치 평온한 강물처럼 그들 곁을 흐르는 인생에서 인간의 일이란 “강변에 앉아, 부르지도 않았는데 차례가 되면 각자에게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현상들을 관찰하는 일”인 것이다.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고, 모레가 내일과 같지 않다면 그들은 너무나도 상심이 클” 것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잠을 자고 졸고 하품하고, 혹은 촌스러운 농담에 넉살 좋게 웃음바다를 이루며 살아” 온 삶의 이상은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주 벽에 부딪히게 된다.

노동을 둘러싼 노예와 주인, 형벌과 구원의 흐릿한 경계

어린 시절 친구이자 독일 출신으로 러시아화 된 안드레이 슈톨츠는 슬롯사이트사이트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단 1루블이라도 예산에 맞추어 쓰듯이 하루하루를 계획에 따라서 살기 위해 노력”했고, “단 1분도 자신이 소비한 시간, 노동, 그리고 영혼과 가슴의 힘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적이 없었다.” 하루 중 많은 부분을 공상 가운데 머무는 슬롯사이트사이트와 달리 그는 “삶을 바라보는 단순한, 이를테면 직선적이고 진실한 시선”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슬롯사이트사이트의 ‘게으름과 무관심’이 이야기 전개의 거의 유일한 동력인 이 소설이 4부 800페이지에 이르는 이유는 작가가 ‘슬롯사이트사이트 기질’에 대한 두꺼운 주석 달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진보적 비평가 니콜라이 도브로류보프는 「슬롯사이트사이트 기질이란 무엇인가?」(1859)라는 유명한 평문을 썼는데, 그는 소설 『슬롯사이트사이트』에서 “시대의 징표”를 찾을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하인의 도움 없이는 양말을 스스로 신을 수 없는 인간은 당시 러시아 귀족의 일반적인 가정 교육 환경에서 길러지는 것이고, 그의 ‘무노동’은 영지를 소유한 지주라는 신분 위에서 가능하다고 도브로류보프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슬롯사이트사이트의 이 과도한 자유가 ‘노예근성’을 낳으며 이는 당연하게도 ‘귀족적 생활양식’과 밀접히 얽혀있다고 분석한다. 이토록 독립적 지위에 있는 인간이 주위 사람 모두의 노예가 되는 것은 그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평가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슬롯사이트사이트에 앞선 인물형을 두루 살피며 러시아 지배층에 편만한 ‘슬롯사이트사이트 기질’을 논증하고 그 지배문화의 전면적 혁신이 없이는 러시아에 미래가 없다고 주장한다.
파벨 페도토프, '귀족의 아침식사'(1850).
슈톨츠는 슬롯사이트사이트를 추궁한다. “자네가 생각하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어디에 있는 거지?” 슬롯사이트사이트는 답한다. “우리들의 분주함, 열정, 전쟁, 상업과 정치의 목적이 정녕 평안을 가져오고자 함이 아니고, 또 잃어버린 천국의 궁극적 목표를 향한 갈망이 아니더란 말인가?” 슈톨츠는 반박한다. “자네만의 유토피아에 불과해.” 슬롯사이트사이트가 대꾸한다. “다들 휴식과 평화를 갈망하고 있어.” 슬롯사이트사이트는 노동을 ‘형벌’로 간주하는 슬롯사이트사이트카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슈톨츠는 매우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이다. “노동이란 삶의 양식이자 내용이고 자연 현상이며 또 목표랄 수 있지, 적어도 내 경우에 있어선. 자네는 노동을 삶에서 멀리 쫓아버렸어.” 슬롯사이트사이트는 자신의 인생이 “쇠퇴로부터 출발”했음을 일찍이 의식하며 자신이 “꺼져가는 불길”과 같다는 것을 직감하는데, 그에게 노동은 ‘선험적으로’ 형벌이다.

고여있는 평화와 진화하는 가치 사이슬롯사이트사이트

러시아 귀족 여성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귀함의 가치를 알아보는 슈톨츠는 슬롯사이트사이트를 깨워 일시적으로나마 삶 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기대는 무엇보다도 재능 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올가 일린스카야에 대한 슬롯사이트사이트의 열렬한 사랑으로 인해 실현되는가 싶은 순간을 맞기도 한다. 올가 일린스카야는 “삶의 목적과 의무에 대해서 그에게 과감하게 상기시켰으며 준엄하게 활동을 요구”했다. 그녀는 슬롯사이트사이트의 순수한 영혼을 사랑하고 슬롯사이트사이트는 청혼한다. 물론 슬롯사이트사이트 자신이 오래지 않아 사랑의 긴장을 감당하지 못한다. “제겐 비록 지루하고 잠이 오긴 해도 평온이 어울립니다. 제게 익숙하니까요. 폭풍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비평가 도브로류보프는 앞선 평문에서 러시아 삶의 미래를 슈톨츠를 통해 부분적으로 보지만, 그보다 귀족 여성인 올가 일린스카야에게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한다. 올가는 슬롯사이트사이트와 헤어지며 자신은 “미래의 슬롯사이트사이트”를 사랑했다는 것과 비둘기처럼 온화한 그가 “머리를 날개 아래에 숨기고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평생을 지붕 아래에서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다른 것이 필요”한데, 그녀 자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후에 슈톨츠와 결혼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조차 ‘혼돈과 씨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올가 일린스카야와 일리야 슬롯사이트사이트의 삽화. / 이미지출처. 필자제공
슬롯사이트사이트의 모든 것을 바꾸려 했던 올가와의 연애가 끝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작가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는 태어나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로 양육된 사람이 아니라 격투를 관람하는 온화한 구경꾼으로 길러진 사람이었다. 행복의 불안도 인생의 격정도 그의 소심하고 나태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으리라. 고로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생 낙원이었기에, 인생에서 도달할 그 무엇도, 바꾸고 뉘우칠 그 무엇도 없었던 것이다.” 슬롯사이트사이트 기질이란 과도기적 현실에 직면한 ‘유리그릇처럼 깨끗한 영혼’의 회의 또는 관료주의, 소시민적 공리주의에 대한 소극적 저항일 수 있다.

자신의 소파와 실내복으로부터 끝내 벗어날 수 없었던 슬롯사이트사이트의 ‘무사안일한 평온’을 곤차로프는 이렇게 묘사한다. “공포로 혼비백산해서 현실에서 좌우를 둘러보던 연약한 인간은 그를 둘러싼 자연의 신비를 푸는 열쇠를 급기야 상상 속에서 찾게 되었다.” 슬롯사이트사이트에게는 러시아의 마지막 토지 귀족 세대가 간직한, 대대로 내려오며 담금질 된 고상함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저 ‘고여있는’ 그것은 세월이 지나며 귀족의 정신에 깃든 우수(憂愁)/그리움을 점점 더 심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길러진 가치를 박차고 나가는 진보가 옹립하는 새 가치에서 새어 나오는 불안을 새 세대는 얼마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슬롯사이트사이트는 그를 살뜰히 돌봐주는 평민 아가피야 프셰니치나와 사이에서 슈톨츠의 이름을 딴 아들 안드레이를 낳는다. 늘 누워있다시피 지내는 생활 방식으로 뇌졸중을 앓게 된 슬롯사이트사이트는 임박한 죽음을 예상하고 슈톨츠에게 아들을 부탁한다. 그로부터 2년 후, 슬롯사이트사이트는 잠을 자다가 눈에 띄지 않게 숨을 거두고 슈톨츠 부부가 그의 아들을 돌보게 된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곤차로프(1812-1891).
곤차로프는 독일인의 실용주의로 대표되는 근대의 물결에서 결핍된 어떤 정신이 러시아 귀족 출신 어머니에 의해 슈톨츠의 심성에 뿌리내리게 했다. 실용주의에는 배치되나 잠재적 고귀함이 슬롯사이트사이트에게서 ‘공상’의 형태로 꽃피운 것을 보고 슈톨츠는 슬롯사이트사이트를 아꼈다. 그럼에도 슈톨츠는 공상을 넘어 “비밀의 문턱에 완고하게 멈추어서서 <… 오로지 법칙의 출현을 고대했다.” 영영 안주하기를 택한 슬롯사이트사이트에게 더 이상 강경하게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슈톨츠의 독백 –너는 슬롯사이트사이트카의 변화를 목격하는 것조차 고통스럽겠지만, 네 안드레이만은 네가 가지 못한 그곳으로 데려가, 우리가 소년 시절에 꾸었던 꿈을 이루게 될 거라고- 속에서 우리는 ‘슬롯사이트사이트 기질’의 신세기적 극복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