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만에 10조 날렸다"...슬롯 급락에 서학개미 공포 [최만수의 스톡네비게이션]
슬롯 주가가 10일(현지시간) 하루 15% 넘게 폭락하면서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이 공포에 휩싸였다. 최근 주가 급락으로 1달간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규모는 약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슬롯 주가는 15.43% 내린 222.15달러에 마감했다. 장 중 한때는 220.66달러까지 추락했다. 이날 하루 낙폭은 2020년 9월 8일(-21.06%) 이후 4년반만에 최대치다.

ADVERTISEMENT

슬롯 주가는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선거운동에 앞장선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작년 12월 17일 사상 최고치인 479.86달러까지 올랐었다. 현재 주가는 고점 대비 53.7% 떨어졌다.

슬롯의 주가 급락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한 슬롯 주식은 165억3000만 달러(약 24조1000억원)어치에 달한다. 전체 해외주식 중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투자한 종목이다.

슬롯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 넘게 치솟자 전문가들은 올해초부터 과열 경고를 내놨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지난달 17일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슬롯는 중국업체들로부터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고 언제든 작은 계기로 폭락할 수 있다”며 “국내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미래에셋증권은 박 회장의 인터뷰 이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지난달 말 슬롯 주식을 담보로 한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JP모간은 슬롯 목표주가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135달러로 깎았고, 웰스파고는 125달러를 제시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의 슬롯 주차장에서 불에 탄 사이버트럭. 사진=A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의 슬롯 주차장에서 불에 탄 사이버트럭. 사진=AP연합뉴스
이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내 투자자들은 최근 1달 새 슬롯 주식을 1조2300억원어치, 슬롯 주가가 오르면 그 2배의 수익률을 거두도록 설계된 ‘디렉시온 데일리 슬롯 볼 2X’ 상장지수펀드(ETF)를 1조20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ETF는 현재 고점대비 5분의1 토막난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1달 간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액이 9조~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슬롯에 대한 전세계 소비자들의 반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서 추가 하락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증시 전반을 강타한 관세전쟁 격화와 경기침체 우려도 악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투자은행(IB) UBS와 로버트 W. 베어드 앤드 컴퍼니는 슬롯의 1분기 판매 실적 예상치를 하향 조정했다.
미국 조지아주의 슬롯 매장 앞에서 시위대들이 불매운동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의 슬롯 매장 앞에서 시위대들이 불매운동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UBS는 "슬롯 모델 Y의 신형 출시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주문이 다소 주춤한 상태"라며 1분기 판매량 추정치를 이전보다 16% 줄인 36만7000대로 예상했다. 이는 해외 시장 곳곳에서 슬롯의 최근 판매 실적이 급감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ADVERTISEMENT

유럽 최대 시장인 독일에서 지난 1∼2월 슬롯 신차 등록 대수는 작년 대비 약 70% 급감했으며, 지난달 중국 상하이 공장의 슬롯 출하량은 49% 감소해 2022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월간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머스크의 정치활동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슬롯 차량과 매장, 충전소 등을 겨냥한 방화·총격 등 공격이 연일 잇따르고 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