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대개 방황하는 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영준(41)의 '지도'는 조금 다르다. 그의 그림은 얼핏 보면 지하철 노선도나 건축설계도, 또는 풍경지도를 연상케 한다. 그 위에 겹겹이 쌓인 10여겹의 무료 슬롯 사이트가 사물의 원래 형태를 흐린다. 관객의 시선이 캔버스에 갇혀 '즐거운 방황'을 하게끔 작가가 설계한 장치다.
이영준 'Notation_ outgoing invasion #5(2024), charcoal and acrlyic on canvas, 220X220 cm. /피비갤러리 제공
이영준 'Notation_ outgoing invasion #5(2024), charcoal and acrlyic on canvas, 220X220 cm. /피비갤러리 제공
서울 삼청동 피비갤러리에서 열린 '오렌지 컨테이너'는 작가의 신작 추상회화 22점을 선보인 전시다. 전시 제목은 감각적인 색을 상징하는 오렌지에 '보관함'이란 뜻의 영어단어 컨테이너를 합친 말이다. '무료 슬롯 사이트 기법'으로 대표되는 최근 3년간 작가의 예술 실험을 모았다는 의미다. 무료 슬롯 사이트 기법은 회화의 겹을 지층처럼 구분해 쌓는 표현 방식이다.

2차원 평면에 그려진 작품들은 묘한 입체감을 연출한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수직·수평의 그리드 위에 이미지를 층층이 쌓은 결과다. 유화와 아크릴, 목탄, 연필, 실크스크린, 차량 도색용 페인트 등 여러 소재가 어우러지며 깊이를 더한다.
이영준 'Notation_ outgoing invasion #4'(2024), charcoal, oil, pencil and acrlyic on canvas, 100X100 cm. /피비갤러리 제공
이영준 'Notation_ outgoing invasion #4'(2024), charcoal, oil, pencil and acrlyic on canvas, 100X100 cm. /피비갤러리 제공
작가는 2012년 성균관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 미술대학으로 건너갔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선 안젤름 키퍼, 게오르크 바젤리츠 등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의 강렬한 색감이 엿보인다. 기하학적 요소로 각 무료 슬롯 사이트를 구성한 부분에선 에티오피아 출신 작가 줄리 머레투의 건축적 추상회화를 떠올릴 만하다.

그의 작품은 특정한 주제를 전하지 않는다. '휙(독일어·Schwuppdiwupp)' '물감을 씻어내다(Wusch)' 등 단순한 소리나 행동을 의미하는 제목이 대다수다. 머레투의 추상회화가 식민정책과 기후 위기 등 사회문제를 은유적으로 꼬집는 것과 대조된다. "관객이 특정 메시지로 이끌리기보다, 무료 슬롯 사이트들이 이루는 형식미에 푹 빠지길 바랐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이영준, 'Schwuppdiwupp'(2024), 200X200cm, Ink, oil, car spray and acrylic on canvas. /피비갤러리 제공
이영준, 'Schwuppdiwupp'(2024), 200X200cm, Ink, oil, car spray and acrylic on canvas. /피비갤러리 제공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정사각형 화면에 담겼다. 하나의 무료 슬롯 사이트를 완성하고 다음 층을 쌓을 때마다 캔버스를 90도 회전하며 그리는 작업 방식이 반영된 결과다. 최적의 구도를 구상하는데 길게는 1년이 꼬박 걸린다고 한다. 작가는 작업실에 캔버스 10여점을 일렬로 늘여놓고 동시에 작업한다. 아이디어가 막힐 때마다 다른 작품을 번갈아 그리기 위해서라고.

작가가 무료 슬롯 사이트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독일에서 선보였던 그의 초기작은 자전적인 서사를 담은 회화가 주를 이뤘다. 일례로 2015년 작 '고향'은 탁한 하늘을 배경으로 그린 무덤 앞에 빈 소주병이 놓인 장면을 묘사했다. 작가는 "수년간 비슷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며 "새로운 화법을 찾던 중 무료 슬롯 사이트 기법을 실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영준의 작업 과정. /피비갤러리 제공
이영준의 작업 과정. /피비갤러리 제공
무료 슬롯 사이트 기법에 관한 작가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엔 알루미늄이나 벽화 등 캔버스를 대체할 배경을 찾고 있어요. 언젠가 평면을 벗어나 실제 3차원 설치작업으로 무료 슬롯 사이트를 확장해보려고 합니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이영준 작가의 모습. /피비갤러리 제공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이영준 작가의 모습. /피비갤러리 제공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