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천연가스(LNG) 온라인 슬롯을 밀어내고 친환경 선박 시장의 ‘맹주’로 치고 올라오던 메탄올 온라인 슬롯의 기세가 꺾였다. 항만에서 메탄올을 주입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데다 메탄올 가격도 상승 추세여서다. 글로벌 해운사들의 발주 트렌드가 중국이 휘어잡은 메탄올 온라인 슬롯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LNG 온라인 슬롯으로 바뀐 만큼 국내 조선사에는 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항로 바뀐' 친환경 선박…메탄올선 지고 LNG온라인 슬롯 뜬다
26일 영국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선사들이 발주한 친환경 선박 810척 가운데 70%가량이 LNG 이중연료 온라인 슬롯(LNG 운반선 제외)이었다. 메탄올 이중연료 온라인 슬롯은 14%에 그쳤다. 2023년 13%포인트로 좁혀진 LNG 온라인 슬롯(점유율 43%)과 메탄올 온라인 슬롯(30%)의 점유율 격차가 1년 만에 56%포인트로 벌어진 것이다. LNG 온라인 슬롯의 약진으로 암모니아 온라인 슬롯 등 기타 친환경 선박 점유율도 같은 기간 27%에서 16%로 추락했다.

올 들어서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글로벌 3위인 프랑스 CMA-CGM에서 LNG 추진 컨테이너선 12척 건조 계약을 따냈다. 7위인 대만 에버그린은 지난해 11월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11척 발주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LNG 추진 컨테이너선으로 바꾸기로 했다. ‘메탄올 붐’을 주도하던 글로벌 2위 해운사 덴마크 머스크도 LNG 온라인 슬롯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메탄올을 ‘이중 연료’로 쓰는 선박은 벙커C유만 쓰는 기존 배보다 탄소를 50% 줄일 수 있다. 탄소 배출 절감 효과만 놓고 보면 LNG 이중연료 온라인 슬롯(20% 감축)을 압도한다. 그런데도 메탄올 온라인 슬롯이 외면받는 건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벙커링 인프라 부족 때문이다. 메탄올을 주입할 수 있는 벙커링 시스템을 갖춘 항만이 전 세계에 35곳뿐이어서다. 반면 LNG 벙커링이 가능한 곳은 276개에 달한다. 연료 가격도 영향을 미쳤다. 메탄올 가격은 에너지 밀도와 추출 비용을 고려할 때 LNG보다 세 배가량 비싸다.

이런 점을 감안해 글로벌 조선·해운 인증기관인 노르웨이선급(DNV)은 LNG 추진 선박이 2035년 말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조선업체들도 이런 트렌드를 읽고 ‘저가’를 앞세워 LNG 온라인 슬롯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가 최근 중국 1위인 국영 중국선박공업그룹(CSSC)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만큼 한국 LNG 온라인 슬롯을 찾는 수요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재 여파로 중국 화웨이가 글로벌 통신 장비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게 조선 분야에서 재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 저가공세에도 LNG 온라인 슬롯 주도권은 상당 기간 한국이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