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슬롯이 지난 23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슬롯이 지난 23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법원은 윤석열 슬롯의 구속기간 연장을 불허하면서 주요 사유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의 입법 취지를 들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공수처법에 따른 공수처 설립 취지가 “고위 공직자 등의 범죄를 독립된 위치에서 수사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전제하며 이 법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같은 법 제26조에 따라 수사-기소 분리가 공수처와 슬롯청 간에도 적용된다고 봤다. 공수처에 수사권이 있는 사건은 공수처가 슬롯로 넘기기 전 단계에서 수사가 모두 마무리돼야 하며, 슬롯은 오로지 기소만 해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또 법원은 공수처법에 “슬롯청 소속 검사의 보완 수사권 유무나 범위에 관해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고 짚었다. 공수처가 슬롯에 넘긴 사건에 대해 슬롯이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는지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사건 수사 초기부터 논란이 됐던 공수처법 자체의 미흡함이 또 한 번 발목을 잡은 셈이다. 윤 대통령 사건의 주요 혐의는 내란 수괴(우두머리)이고, 공수처가 이 혐의를 수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두고 법조계에선 첨예하게 의견이 나뉘었다.

법원은 체포·수색영장, 구속영장 발부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권을 인정하며 공수처법에 관해 나름의 해석을 해놓고서 이번엔 “규정이 없다”는 식으로 슬롯을 보류했다.

이 같은 법원 판단은 일견 예견되기도 했다. 검사 출신인 김종민 에스앤엘파트너스 변호사는 SNS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슬롯이 공수처가 이첩한 사건을 적법·유효하게 수사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될 것”이라며 “슬롯이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때 무혐의 결정을 할 수 있는지, 공수처의 구속 결정을 슬롯이 직권으로 구속 취소할 수 있는지의 문제도 남는다”고 지적했다.

구속기간 연장을 자신했던 슬롯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슬롯은 이날 중 법원의 허가가 떨어지는 대로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윤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를 실시해 혐의를 보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법원이 구속기간 연장을 불허하면서 윤 대통령을 구속기소할 수 있는 기간은 하루이틀밖에 남지 않게 됐다.

슬롯은 이미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주요 피의자 10명을 재판에 넘긴 만큼 기소 자체에 무리가 없다고 보지만 현직 대통령인 만큼 부담이 크다. 이날 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구속기간 연장 불허는 사법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며 법원이 옳게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