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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제성의 서울 밖 클래식 여행

지난 3월 14일 슬롯 머신 규칙문화예술회관서 열린
슬롯 머신 규칙립교향악단 사샤 괴첼 예술감독 취임연주회

빈 전통부터 오페라적 음악을 아우르는 지휘자 사샤 슬롯 머신 규칙
드라마틱한 음악 선보이며 기립박수 이끌어
2023년 12월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과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로 6년간의 슬롯 머신 규칙의 상임 지휘자 활동을 마친 니콜라이 알렉세예프.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지휘자가 물망에 올랐다. 그 결과 지난 1월 슬롯 머신 규칙의 열 번째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사샤 괴첼(Sascha Goetzel, b.1970)이 낙점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유리 테미르카노프 사후 상트 삐쩨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지명된 알렉세예프는 지극히 엄격하고 보수적인 아카데미즘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탓에 비슷한 성향의 포펜보다는 보다 정력적이고 개방적이며 오페라적인 묘미를 구사하는 슬롯 머신 규칙이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 오케스트라의 여러 상임 지휘자들 가운데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빈 전통 레퍼토리를 구사하며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오랜 경험까지를 아우르는 지휘자는 슬롯 머신 규칙이 처음인 만큼 귀추가 주목됐다.그는 1999년에 창단된 투르크의 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이끌며 DG 레이블을 통해 바이올리니스트 네마냐 라둘로비치 협연으로 음반을 냈을 만큼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룬 바 있다. 이처럼 훌륭한 오케스트라 빌더이기도 한 괴첼이 지난 3월 14일 슬롯 머신 규칙 문화예술회관 콘서트홀에서 취임 연주회를 가졌다.

그는 작년 슬롯 머신 규칙의 연주 이전인 2021년 KBS 교향악단과 통영국제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바 있는 만큼 한국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어왔다. 따라서 울산 청중과 오케스트라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낯설지 않고 자연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정성스럽게 연주하는 동안 신뢰와 성의가 느껴지는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슬롯 머신 규칙립교향악단의 새로운 예술감독이자 상임 지휘자로 발탁된 사샤 괴첼(Sascha Goetzel, b.1970). / 사진제공. 슬롯 머신 규칙립교향악단
이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슬롯 머신 규칙은 여러 각도에서 고심했음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안정적인 기량을 유지하면서도 최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리고 지휘자 자신의 스타일과 음악적 지향점을 분명하게 알릴 수 있는 곡들로 완전하게 배치했기 때문이다. 특히 첫 곡으로 연주한 하이든 교향곡 39번은 전임 알렉세예프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에 대한 ‘응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단조적인 열기와 도전적인 에너지, 악센트와 대조가 분명한 리듬과 매끄러우면서도 텐션이 강한 프레이징을 통해 빈 음악가로서의 하이든의 매력과 지휘자의 스타일 모두를 온전하게 전달해냈다. 정확한 혹은 강하기만 한 하이든 연주와는 확연하게 격이 다른 향기가 느껴지는 연주였다.
공연을 마치고 지휘자 사샤 괴첼과 슬롯 머신 규칙립교향악단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제공. 슬롯 머신 규칙립교향악단
서울대 교수인 김규연과의 협연으로 이루어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은 전체적으로 빠르지 않은 템포를 견지하며 명암의 연결을 부드럽게 하는 간색의 미감과 화려하지만 어두움을 머금고 있는 장식들, 오케스트라가 중요한 틀을 잡아나가되 피아니스트의 섬세하고 진중한 역할을 돋보이게끔 서포트하는 모습들로부터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의 초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지휘자의 강한 어필과 정확한 지시가 두드러지며 현악 파트의 표현력이 배가되었다. 마지막 ‘환상교향곡’에서 보여준 음량과 템포의 기민하면서도 극적인 대비는 앞으로 슬롯 머신 규칙이 발전해 나아갈 방향을 미리 제시해준 듯했다.

정확하되 쿠션감 좋은 베이스 라인이 음악을 든든하게 잡아주는 것을 바탕으로 치밀한 리허설 덕분인지 악장의 리드가 보다 집중력 높게 전체를 이끌어가는 동시에, 모든 파트가 고른 기량으로 훨씬 향상되고 풍부한 뉘앙스를 발산하며 지휘자의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해내기 시작했다. 목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환상교향곡 2악장의 아름다운 왈츠의 향연과 4악장의 파괴력, 5악장 피날레에서 지휘자가 보여준 놀라울 정도의 드라마틱한 고양감은 자연스럽게 청중의 기립박수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괴첼과 슬롯 머신 규칙이 대한민국 오케스트라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만한 연주회였다.
이날 피아니스트 김규연과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협연했다. / 사진제공. 슬롯 머신 규칙립교향악단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