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과 추상 넘나드는 벨기에 출신 화가
쿤 반 덴 브룩 개인전 ‘그림자의 자유’

사진 바탕으로 그린 20여년 전
온라인 바카라 모티브로 도시의 일상
재해석하는 관점 제시

‘산업용 도료’, ‘타르(Tar)’ 활용한
새로운 회화 기법 선보여


대부분의 사람이 길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단상은 단조롭다. 매일 지나치는 일상의 온라인 바카라이거나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단일 뿐,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7개 온라인 바카라의 첫 글자가 모두 S로 시작하는 'S' series.  왼쪽부터 'Surf', 'Spring', 'Snow', 'Sunrise', 'Sunset', 'Space', 'Subside'. /갤러리바톤, Photo by Jeon Byung Cheol.
7개 온라인 바카라의 첫 글자가 모두 S로 시작하는 'S' series. 왼쪽부터 'Surf', 'Spring', 'Snow', 'Sunrise', 'Sunset', 'Space', 'Subside'. /갤러리바톤, Photo by Jeon Byung Cheol.
벨기에 출신 화가 쿤 반덴 브룩(Koen van den Broek)이 길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브룩은 많은 사람이 거리를 이용하고, 모두가 표지판의 사인을 같은 의미로 인지하며, 노숙자건 부자건 평등하게 같은 길을 다닌다는 점에서 길이 기능적,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믿는다. 도로를 최초의 건축물로 정의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원시의 공간에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도록 이동을 도와주고, 완성된 구조물끼리의 연결이 가능하게끔 한다는 점에서다.

도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작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시와 그 주변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을 탐구해 왔다. 도로 표지판이나 주차장, 격자무늬 보도, 교각, 도로 경계선 등 일상에서 흔히 보는 모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는 이 온라인 바카라에 깃든 색감과 기하학적인 요소의 의미에 다시금 주목하도록 이끈다. 현실의 온라인 바카라을 선과 면 등으로 단순화해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Koen van den Broek, 2003, Veracruz, 88x115cm./갤러리바톤
Koen van den Broek, 2003, Veracruz, 88x115cm./갤러리바톤
작가가 2003년 작업한 위 온라인 바카라을 재해석한 신작. Koen van den Broek, 2025, V-G, traffic paint and tar on linen, 90x120cm./갤러리바톤
작가가 2003년 작업한 위 온라인 바카라을 재해석한 신작. Koen van den Broek, 2025, V-G, traffic paint and tar on linen, 90x120cm./갤러리바톤
도시의 일상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오던 브룩이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한 온라인 바카라들을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열리는 개인전 ‘그림자의 자유(Freedom of Shadows)’를 통해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7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S series’를 비롯해 총 15점의 온라인 바카라을 소개한다. 온라인 바카라들의 모티브가 된 것은 바로 작가가 20여년 전 그린 그림. 2003년, 2006년에 멕시코와 미국 등에서 촬영한 사진을 참고해 만든 온라인 바카라에 담긴 기억과 감상을 재해석했다.
쿤 반 데 브룩 '그림자의 자유' 전시 전경. /갤러리바톤, Photo by Jeon Byung Cheol.
쿤 반 데 브룩 '그림자의 자유' 전시 전경. /갤러리바톤, Photo by Jeon Byung Cheol.
작가가 이같은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은 2년 전, 지난 커리어를 회고하는 도록 출간을 준비하면서부터다. 지난 25년간의 작품 활동을 돌아본 그는 다음 단계(next step)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우선 사진을 레퍼런스 삼아 작업하던 기존 방식과 거리를 두면서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이후 현실의 온라인 바카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재료를 찾아 나섰다.

도로에 안내 문구나 차선을 표시하는 ‘산업용 도료’와 도로를 포장할 때 주로 사용하는 ‘타르(Tar)’가 물감을 대신할 재료로 낙점됐다. 두꺼운 질감과 강렬한 색감이 새로운 온라인 바카라에 무게감을 더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Koen van den Broek, 2025, Broken Purple Shadow_oil, traffic paint and tar on linen, 200x150cm. /갤러리바톤
Koen van den Broek, 2025, Broken Purple Shadow_oil, traffic paint and tar on linen, 200x150cm. /갤러리바톤
대학 시절 건축을 전공하고 잠시 건축 엔지니어로 일한 그에게 이 재료들이 익숙할 법도 했지만, 물감이 아닌 재료들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업 초반, 아무것도 섞지 않은 타르를 사용했을 때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타르가 캔버스를 타고 흘러내려 새로 작업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롤러에 타르를 넣어 굴려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보며 전문가와의 논의를 거친 끝에 재료에 유화 작업을 더해 지금의 기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운 온라인 바카라을 위해 사소하지만 작업 환경에도 변화를 줬다. 평소 작업 중에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 신작 작업을 하면서는 글램 록의 선구자인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음악을 들으며 작업에 몰두했다.

이번에 공개한 작품 중 ‘특히 V-B’, ‘V-Y’, ‘V-G’, ‘V-R’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등 도로용 온라인 바카라의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과감한 변화가 드러난다. 가장 미니멀하면서 실크스크린 기법의 매력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벨기에 출신 화가 쿤 반 덴 브룩./갤러리바톤
벨기에 출신 화가 쿤 반 덴 브룩./갤러리바톤
수작업을 통해 잉크를 밀어 넣는 실크스크린 기법은 같은 온라인 바카라을 작업하더라도 작업자의 압력이나 속도, 각도에 따라 미세한 디테일의 차이를 만든다. 초록색 배경의 작품 ‘V-G’의 오른쪽 상단 그림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페인트가 덜 묻어나 그림자 밑에 린넨이 드러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실크 스크린 기법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작품들을 설명하며 이 창작 과정에서 장인이 느낄 법한 특별한 기분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이 온라인 바카라들은 앤디 워홀(Andy Warhol)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워홀이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캠벨 수프와 같이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것과 같이,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