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영미권에선 쓰지 않는 말 '카지노 사이트'
<과학 용어의 탄생은 자연, 환경, 공룡, 행성 등 과학 용어의 기원을 파헤친다. 저자 김성근은 과학사 전문가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니덤연구소와 미국 UC버클리 과학기술사연구소에서 동서양 과학을 비교 연구했다. 현재 전남대 자율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은 17개의 근대 과학 어휘가 만들어진 역사를 설명한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근대 과학 용어가 동양에 전파돼 번역된 과정도 추적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과학 용어뿐 아니라 일상 속 단어들과 관련된 이야기도 소개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카지노 사이트’라는 말이 일본 도쿄전등(도쿄전력의 전신)이 1924년 발행한 규정집에 등장한 ‘콘센토 프라그’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 규정집은 전선이 연결된 단자를 ‘프라그’, 벽에 설치하는 어댑터를 ‘콘센토’로 정했다. 영어로는 ‘아웃렛(outlet)’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카지노 사이트라는 말로 통용된다.

책은 과학 발전사뿐 아니라 단어와 관련된 정치적, 사회적 맥락까지 바라본다.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 혁명, 19세기 제국주의, 1910년대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신구학문 논쟁’ 등 용어에 비친 사회상도 다룬다.

과학 용어를 소재로 근대 역사를 깊게 파고드는 책이다. 어원 해석을 넘어 단어에 엮인 정치적, 사회적 배경까지 자세하게 다룬 게 장점이다.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을 과학 상식책보다는 학술서에 가깝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