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미국 슬롯시 맨해튼 미드타운의 도로. (사진=AFP)
19일(현지시간) 미국 슬롯시 맨해튼 미드타운의 도로. (사진=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올해 초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뉴욕 슬롯(CBDTP) 정책에 대한 승인 철회를 결정했다.

미국 교통부는 19일(현지시간) "정부는 뉴욕에서 시행 중인 중심상업지구 통행료 프로그램(CBDTP)의 시범 운영 승인을 철회했다"며 관련 내용을 담은 서한을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슬롯는 연방 고속도로에 부과되는 요금이기 때문에 연방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교통부는 슬롯가 본래 취지인 교통 혼잡 해소보다는 당국의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정책의 목적과 배치된다고 판단했다. 숀 더피 교통부 장관은 서한에서 "뉴욕의 슬롯 정책은 노동자 계층과 소상공인의 면전에서 뺨을 때리는 것"이라며 "뉴욕으로 진입하는 통근자들은 이미 유류세와 기타 세금을 통해 고속도로 건설·유지 비용을 부담해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정책은 근로자에게서 더 많은 돈을 걷어 대중교통 자금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라며 "모든 미국인이 경제적 여건에 상관없이 뉴욕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링컨터널 출구 근처에 운전자에게 슬롯 부과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AP)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링컨터널 출구 근처에 운전자에게 슬롯 부과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AP)
슬롯 정책은 출퇴근 시간대 맨해튼 60번가 남쪽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대해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반 승용차에는 9달러(약 1만3000원), 트럭과 버스에는 최대 21.6달러(약 3만1000원)가 부과된다. 하루 한 번만 요금이 부과되고, 같은 날 여러 번 진입해도 추가 요금은 발생하지 않는다.

뉴욕주는 2021년부터 슬롯 도입을 추진했지만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 거부로 시행이 미뤄졌다.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교통부의 승인을 받아 지난달 5일부터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슬롯가 부과된 것은 뉴욕주가 처음이다. 유사한 슬롯 시스템은 영국 런던(15파운드·약 2만7000원)에서 2003년에 도입됐고, 싱가포르·스웨덴 등 국가에서도 운영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 "슬롯는 끝났다. 맨해튼과 뉴욕 전체가 구원받았다. 국왕 만세!"라고 적었다. 백악관도 이를 SNS에 공유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왕관을 쓴 이미지를 타임지 표지를 패러디한 형태로 합성해 함께 게시했다. 뉴욕으로의 통근 비중이 높은 뉴저지의 필 머피 주지사(민주당)는 "슬롯로 뉴저지 통근자들의 부담은 증가하는 반면, MTA는 지나친 수익을 얻게 된다"며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사진=백악관 X(옛 트위터))
(사진=백악관 X(옛 트위터))
MTA와 뉴욕교량관리기관은 즉각 반발하며 맨해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기관은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에서 약속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명백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호컬 주지사도 반발 성명을 내고 "미국은 왕이 통치하는 게 아니라 법치 국가"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국왕 만세" 발언을 겨냥했다. 그는 "법정에서 보자"며 소송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호컬 주지사는 "슬롯 시행 후 통근 시간이 단축되고, 학생들의 통학 버스 이용도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뉴욕시는 올해 슬롯로 5억달러(약 7200억원)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 대중교통 당국은 슬롯 도입 이후 허드슨강과 이스트강을 건너는 차량 이동 시간이 10~30% 단축됐고, 지하철 이용객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민주당 소속 제럴드 내들러 뉴욕 하원의원은 "연방 정부가 한 번 승인한 정책을 이처럼 임의로 철회하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비판했다.

MTA는 슬롯 수입을 기반으로 150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노후한 지하철 노선을 보수하는 등 전반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선할 방침이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