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연주할 땐 악보 속을 살다 오는 것 같습니다. 저희 슬롯 그대로 (브람스가) 남아 있는 느낌이에요.”

노부스 슬롯의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이 이처럼 말했다. 노부스 슬롯은 실내악 불모지인 한국에서 영국 런던 진출에 성공한 한국 1세대 현악 사중주단이다. 브람스 현악 사중주 전곡을 연주한 앨범을 발매하고 올해 전국 투어에 나선다.
18일 서울 용산구 사운즈S에서 현악사중주단인 '노부스 콰르텟'이 연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김재영, 첼리스트 이원해, 비올리스트 김규현. / 사진출처. 목프로덕션
18일 서울 용산구 사운즈S에서 현악사중주단인 '노부스 슬롯'이 연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김재영, 첼리스트 이원해, 비올리스트 김규현. / 사진출처. 목프로덕션
“성부 촘촘한 브람스에 여백 만들어”

노부스 슬롯은 18일 서울 용산구 내 복합문화공간인 사운즈S에서 전국 투어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현악 사중주는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학구적이고 진지한 성격이 짙어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로 꼽힌다. 과거엔 국내에서 이 장르를 공연으로 접할 기회도 드물었다. 이 분위기를 바꾼 건 2007년 결성된 노부스 슬롯이었다. 이들은 뮌헨 ARD 콩쿠르 2위, 모차르트 국제콩쿠르 1위 등 해외 경연을 휩쓸고 2022·2023년 한국인 최초로 런던 위그모어홀 상주음악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이들을 롤 모델로 삼고 따르는 후배 현악 사중주단이 여럿 있을 정도다.

노부스 슬롯은 오는 20일 브람스 현악 사중주 전곡을 녹음한 앨범을 발매한다. 디지털 음원은 지난 14일 내놨다. 최근 10년 새 이들이 낸 앨범만 8개에 달한다. 노부스 슬롯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선율을 이끄는 제1 바이올린을 달리했다. 1번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2번과 3번은 김재영이 맡았다. 김재영은 “곡 마다 각자 특색에 어울리는 쪽으로 제1 바이올린을 정했다”며 “브람스의 현악 사중주 곡은 성부 4개가 촘촘하고 빼곡하게 악보를 채우고 있어 곡 해석 과정에서 여백을 만드는 작업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녹음 과정에서 어려웠던 순간도 화제에 올랐다. 노부스 슬롯은 부천아트센터에서 이번 앨범을 작업했다. 공연장 일정 상 하루에 곡 1개의 모든 악장을 소화하다보니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성공시켜야 했다. 동료의 활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서로의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올리스트 김규현은 당시를 회상하며 “스트레스가 따랐지만 시간적인 압박 속에서 연주를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컸다”고 말했다.
노부스 슬롯의 '브람스 현악 사중주 전곡 앨범' 커버 / 사진출처. Novus String Quartet 홈페이지
노부스 슬롯의 '브람스 현악 사중주 전곡 앨범' 커버 / 사진출처. Novus String Quartet 홈페이지
활동 19년차...“지금이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

노부스 슬롯은 올해가 활동 19년차다. 지금이 음악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때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김재영은 “앨범들을 준비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음악적인 성장과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며 “20대 나이엔 도전할 무대를 보고 갔으면 됐지만 지금은 예술가라는 직업적인 소명과 음악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영욱은 “실내악 불모지인 환경에서 시작한 다른 후배들을 응원하면서 이 장르를 오래 지속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부스 슬롯의 활약으로 현악 사중주의 국내 저변이 넓어지면서 올해엔 이 장르 공연 다수가 예정돼 있다. 노부스 슬롯은 오는 25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전국 투어의 막을 연다. 3월 1일 부천아트센터, 8일 롯데콘서트홀을 거쳐 27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끝내는 일정이다. 현악 사중주 프로젝트 공연인 ‘월드 스트링 슬롯 시리즈’로 4월 에벤 슬롯, 벨체아 슬롯, 11월 하겐 슬롯 등 세계적인 현악 사중주단도 내한 공연에 나선다. 실내악 애호가로선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울 한 해다.

노부스 슬롯은 실내악을 잘 즐길 수 있는 팁도 공유했다. 김재영은 “명작 서적은 한 번 두 번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듯이 현악 사중주도 여러 번 들을수록 진하게 우러난다”며 “각 세대를 상징하는 현악 사중주 팀들의 공연을 즐겨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첼리스트인 이원해는 “좋은 음반을 많이 들으면서 각 팀의 특색을 비교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들으실수록 교향악단과 다른 부분들을 느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