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바카라 정책에 대한 우려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바카라 부과 전에 원자재를 구비해두려는 ‘패닉 바잉’ 수요가 몰리면서다. 기업들은 제조 비용을 상품 가격에 반영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등 사업 구상을 다시 짜고 있다.

◇뉴욕에서 구리 수요 ‘급증’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에너지, 비철금속, 귀금속 등 주요 바카라 24개를 추종하는 ‘블룸버그바카라현물지수’는 지난 14일 546.46달러를 기록해 올해 들어 이날까지 7.92% 상승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와 농산물 가격이 폭등한 뒤인 2022년 10월 이후 최고치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3월 만기 구리 선물은 올 들어 15.8% 오른 466.2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기간 열연코일(HRC) 가격은 t당 709달러에서 768달러로 상승했다. 주석은 12.31%, 알루미늄은 3.43%, 철광석은 3.1% 뛰었다.

원자재 가격 급등은 트럼프 대통령 바카라 정책이 본격화하기 전에 재고를 비축하려는 트레이더의 수요가 몰린 결과로 풀이된다. 전 세계 원자재 거래의 중심지인 뉴욕과 시카고에서 매수세가 늘었다.

이날 COMEX에서 거래되는 구리의 런던금속거래소(LME) 대비 프리미엄은 역대 바카라치인 t당 1200달러로 치솟았다. 뉴욕에서 구리를 사려면 런던 가격(t당 9660달러)의 약 8분의 1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런던에서 팔아 뉴욕에서 사는 ‘대서양 횡단 차익 거래’가 크게 늘었다.

이 같은 가격 차는 트럼프 행정부가 구리에 25% 바카라를 부과할 확률을 약 50%로 책정한 것과 같다고 블룸버그는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구리 바카라를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지난해 미국 하원이 구리를 전략 광물로 지정한 만큼 언제든 바카라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와 멘디 ING 바카라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발생한 ‘구리 사재기’가 재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이 발발하며 COMEX 구리 재고는 25만t으로 전년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상품 가격 올리고 공급망 재정비

‘25% 바카라’의 직접 대상이 된 철강·알루미늄을 비축하려는 미국 내 수요도 급증했다. 미국 중서부 알루미늄의 LME 대비 프리미엄은 t당 774달러 수준으로 올해 초보다 49% 이상 올랐다. 시장에서는 알루미늄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과 트레이더들이 경쟁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2023년 기준 119억달러(약 17조원)를 수입한 세계 최대 알루미늄 수입국이다.

금 가격도 무역 전쟁에 대비한 안전자산 수요로 연초 대비 7%가량 올랐다. 바카라에 대비해 금괴를 미국으로 옮기는 ‘금괴 호송 작전’이 벌어지며 지난달 런던에 보관된 금은 490만트로이온스 감소했다. 기록을 작성한 2016년 이후 최대 규모 유출이다.

유가는 러·우 바카라이 종식될 조짐을 보이면서 하락세다.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14일 연초 대비 1.38%, 한 달 전보다 9.44% 하락한 배럴당 70.7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바카라 등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자 미국 기업들은 사업 계획을 재편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부터 14일까지 S&P500 소속 기업이 실적 발표에서 바카라를 언급한 횟수는 795회로 전년 동기(39회)보다 20배, 전 분기(246회)보다 3배 넘게 늘었다.

이에 기업들은 상품 가격을 인상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등 기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미국 헬스케어 기업 켄뷰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에서 “바카라 영향을 추적하기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다”며 “잠재적으로 (더 높은) 가격 책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코드 스캐너 판매 업체 제브라테크놀로지는 “가격을 올리고 재고를 비축하겠다”며 “공급망 이니셔티브를 가동해 바카라를 상쇄하겠다”고 언급했다. 캐나다 최대 항공사 에어캐나다는 무역 전쟁에 따른 환율 급변에 대비해 환헤지 비율을 기존 60%에서 70%로 높였다. 에어캐나다는 연료와 대출 원리금 등의 비용을 달러로 지불하고 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