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시대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예술적 실험을 아직 멈추지 않아도 되었다. 혁명정부의 관료화는 1926년 레닌의 사망과 함께 더욱 가속화 했고, 1932~34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소비에트의 공식 예술로 선포되고 규정되면서 예술적 실험성은 일체 부정되었다.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쇼프의 시대, 소위 해빙기라 불리는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그간 암암리에 활약하던 비공식 미술이 속속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단골 테마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른바 '엄격한 양식’이 출현했다. 단절된 전통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건져 올릴 만한 가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고대 러시아와 이탈리아 북부 르네상스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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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가족(1964)을 보자. 두 자녀를 돌보는 빨간 수영복 차림의 아내를 화면의 중심에 배치했다. 엄마와 딸의 서로를 신뢰하는 손길, 엄마가 아들의 머리 위에 얹는 보호의 몸짓이 드러난다. 작가 자신인 남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초연한 듯한 표정과 그림의 비유적 구조를 통해 전달되는 심사가 자못 복잡하다. 바로 뒤 카약을 타는 인물과 좀 더 멀리서 휴가를 즐기는 인물들의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생생한 세부 사항으로 가득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여름휴가의 인상이지만 그 중심에는 여성성과 모성에 대한 작가의 이상적인 생각이 구현되어 있다. 공간에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매우 평면적이다. 선명한 실루엣 처리, 청록색과 주홍색, 빨간색과 검은색, 흰색의 갈색의 대조적 병치는 이콘[성상화] 페인팅의 특징적 조합이다.

이 작품을 남긴 드미트리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소비에트 러시아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다. 모스크바 응용 및 장식 예술 연구소(그는 여기서 스테인드글라스-명확하고 밝은 세계-를 익혔다), 수리코프 기념 모스크바 국립 미술 학교에서 공부했고 고대 러시아 이콘 페인팅과 초기 르네상스 페인팅의 전통을 혁신적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을 남겼다. 위에서 말한 '엄격한 양식’ 스타일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론가들은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를 꼽지만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자신이 이 방향의 사회적 파토스에 대해 의식적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세대의 예술가들이 1920년대 소비에트 미술의 전통에 의존해 일정 정도 간결한 언어를 개발했을 때,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고대 러시아 이콘 페인팅의 유산과 이탈리아 북부 르네상스로 눈을 돌렸고 유화 대신 템페라를 택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 뒤에는 은유적 비유, 상징 및 우화가 있다.

역사적 비극에 대한 종교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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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늙은 사과나무 아래(1969)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작품에서 어머니 아나스타샤 표도로브나의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꾸준히 공을 들였다. 이는 비극적 가족사에 헌정된 그림 <늙은 사과나무 아래(1969)에서 생생하게 표현된다. 한 연로한 여자가 맨발에 등을 구부리고 막대기에 기대어 있다. 그 옆에는 사과를 따고 있는 손주들이 있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에게 몰두하고 있고, 무표정한 얼굴은 그녀가 이미 현실 세계와 천상의 세계라는 두 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이미지는 현실적이면서도 전형성을 띤다. 그녀의 모습은 늙은 사과나무처럼 보이는데 부목을 대듯 화가는 인물 앞으로 지지대를 두었다. 그것은 곧 십자가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사과는 유혹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신한 그리스도 구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강인한 여성은 스탈린 시기 남편의 체포와 처형, 전선에서 아들의 죽음이라는 삶의 시련을 견디어냈다. 작품에서 어머니는 클로즈업되어 깊은 생각에 몰입하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속에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프레임 좌우로 1937년 총에 맞은 아버지와 1944년 전선에서 사망한 그의 형제를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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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삼부작 <1937년(1987)
비극적인 가족사라는 주제는 1987년 삼부작 <1937년에서 더욱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려진다. 프레임 상단에는 "억압과 불법의 시절에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에게 바친다”라고 쓰여 있고 하단에는 그의 사후 복권 증명서 사본이 장착되어 있다. 1937년, 작가의 아버지는 거짓 고발로 체포되어 2년 후 총살당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앞선 1929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지식인 공동체를 만들었던 그의 할아버지도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북부 르네상스의 도상학 체계에 따라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중앙에 아버지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를, 왼쪽에는 어머니 아나스타샤 표도로브나, 형 바실리와 자신을, 오른쪽에는 할머니 나데즈다 바실리예브나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좌우를 꽃으로 둘러싸 기념비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장면에 다큐멘터리적 진정성과 상징적 읽기를 결합하고자 했다. 손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십자가 처형의 장면 같다.

소련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인문주의와 그리스도교의 표현

뛰어난 예술가에게 닥치게 마련인 시련이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에게도 찾아왔다. 브레즈네프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명령 같은 것들 말이다. 스탈린 초상화 의뢰를 회피했던 스승 파벨 코린의 방식으로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도 기지를 발휘했다. 브레즈네프에게 자기 눈앞에서 실물 모델로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함으로써 관제 예술가가 될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그는 예술적 비전을 구현하면서 결과적으로 당의 이데올로기적 요구에 부응하기도 했다.
드미트리 쥘린스키, 삼부작 <새 땅에서>(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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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작 <새 땅에서(1967)를 보자. 세 폭 그림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개간지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미래라는 관념 안에서 삶이 이상화되어있다. 중세 접이식 제단화,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케 함으로써 '완벽한 세계’라는 이미지와 연관된다. 개척자들이라는 전형성에서 탈피해 작가는 ‘자기 사람들’로 인물들을 채웠다. 프레임은 조각가인 그의 아내 니나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카야가 작업한 여덟 개의 석고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 화폭의 주제는 "휴일”이다. 꽃이 만발한 잔디밭을 이미지의 경계까지 확장하는 역원근법으로 전환한 것이 눈에 띈다. 땅의 개간은 물질적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영적 환경의 창조를 의미한다.
드미트리 쥘린스키, <일요일>(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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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조화를 이룬 인간 삶의 충만함이라는 모티브는 1970년대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일요일(1973)에서도 이어진다. 소녀들이 숲에서 쉬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연령대로 작가의 친구 혹은 동료 예술가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삶을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하는 것으로 끌어 올렸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놀라운 감각으로 충만한 인물들! 그를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과 관련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다.
드미트리 쥘린스키, <연주하는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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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초상화를 남긴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것과 나를 둘러싼 것을 그렸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그려본 적이 없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의 작품에서 영광의 나팔을 든 천사는 리흐테르 위를 맴돈다. 리히터 자신은 등을 곧게 하고 영원을 바라본다. [<연주하는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1985)] 관람자는 색채의 적극적인 역할, 구도의 역동성 등에 매료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후 러시아 미술에 유럽 르네상스와 고대 러시아 이콘 페인팅 스타일을 현대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예술가가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드미트리 쥘린스키, <무당벌레>(1990)
드미트리 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무당벌레(1990)
그리고 당장이라도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림은 이것이다. 아마도 누나와 동생일, 누가 봐도 소비에트 소년단 복장을 떠올리게 하는 빳빳하고 붉은 옷감의 셔츠를 입은 의젓한 소녀와 약간 성기게 짜인 듯한 스웨터를 입은 해맑은 소년의 초상. 이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것은 산딸나무. 녹음과 대비되는 흰 꽃이 싱그럽다. 여기에 곧 빨간 열매가 열리리라. 산딸나무는 응달슬롯사이트 볼트 추천 잘 자라지만 양지바른 곳도 썩 괜찮다. 땅슬롯사이트 볼트 추천는 파스텔톤의 아이리스와 루피너스가 허리까지 자랐다. 누나의 손바닥에 놓인 무당벌레를 동생이 감탄하며 바라본다. 무당벌레는 러시아어로 보쥐야 카롭카 - 신의 소,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신성한 인격이면서 슬라브 민속으로는 땅과 다산의 상징이다. "무당벌레야, 하늘로 날아올라 내게 빵을 가져다주어. 흰 빵이든 검은 빵이든 좋지만 탄 것만은 말고.” 하는 속담처럼 열매 맺는 계절을 바라는 동산의 한 때.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