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3000억원 가까운 슬롯 꽁 머니 주식을 매각하기로 한 건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 분리)’ 규제 위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다. 슬롯 꽁 머니가 계획대로 이달 자사주를 3조원어치 매입해 소각할 경우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슬롯 꽁 머니 지분율이 10%를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양사가 사전에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이런 리스크를 해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대규모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슬롯 꽁 머니의 주주환원 정책이 일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금산분리 등 규제와 충돌하는 문제가 반복되는 만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슬롯 꽁 머니 자사주 소각 ‘나비효과’

'금산분리 해소' 고육지책…슬롯 꽁 머니 자사주 소각前 조정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11일 이사회를 열고 슬롯 꽁 머니 주식 425만2305주(전체 발행주식 수 대비 0.07%), 74만3104주(0.01%)를 각각 매각하기로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양사의 주식 처분 금액은 2777억원에 달한다.

실제 처분 금액은 12일 장 시작 전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과정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블록딜에 참여한 기관투자가의 매입 수요가 크다면 처분 가격은 시장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결정되지만, 수요가 적을 경우 할인율이 높아질 수 있다. 슬롯 꽁 머니생명과 슬롯 꽁 머니화재는 주식 처분 가격을 12일 추가 공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슬롯 꽁 머니가 자사주 매입·소각 방안을 발표한 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금산분리 규제상 금융 계열사는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10% 초과해 보유할 수 없는데, 이미 삼성생명(8.51%)과 삼성화재(1.49%)의 지분율은 10%를 꽉 채우고 있어서다. 슬롯 꽁 머니가 자사주를 3조원어치 소각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율은 각각 8.58%, 1.50%로 상승한다. 하지만 이번 지분 매각으로 양사의 슬롯 꽁 머니 지분율은 10% 이내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슬롯 꽁 머니 자사주 소각에 따른 삼성생명·화재 지분 문제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슬롯 꽁 머니가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한 뒤 이듬해 5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슬롯 꽁 머니 지분 0.42%를 1조3165억원에 매각했다.

◇밸류업 정책 후퇴 우려

이번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 매각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파급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사의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처분 금액이 시장 가격보다 낮을 경우 슬롯 꽁 머니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슬롯 꽁 머니 소각 등 밸류업 정책이 금융당국의 법령과 충돌하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JB금융지주가 슬롯 꽁 머니를 소각할 경우 대주주인 삼양사(14.75%) 지분율이 법상 기준인 15%를 초과할 수 있다. DGB금융지주도 슬롯 꽁 머니 소각 시 최대주주인 OK저축은행(9.55%)의 지분이 법상 기준인 10%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현재 금산법, 금융지주회사법, 은행업법, 보험업법 등에선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에 대해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분 회사가 법상 한도에 맞춰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슬롯 꽁 머니를 소각하면 한도를 초과하는 상황이 속출할 수 있다”며 “슬롯 꽁 머니 소각 등으로 인한 지분 초과에 한해 금융위원회가 예외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