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우후죽순 폴리티슬롯사이트 지니
한국 증시에서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딴 OOO 테마주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그전까지는 대통령 등 정치인보다 정책 수혜주라는 말이 많이 사용됐다. 김영삼(YS) 정부 때는 증권시장 개방에 따라 저PER(주가수익비율)주, 김대중(DJ) 정부 때는 정보기술(IT)주와 남북경협주가 테마를 이뤘다. 2002년 16대 대선을 전후해 노무현 테마주, 이회창 테마주라는 말이 조금씩 쓰이기 시작하다가 17대 대선부터 정치인 테마주가 확 퍼졌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테마주 등이다. 정치인 테마주는 일시 급등세를 타다가 폭락하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상장 폐지로 최악을 맞은 사례도 있었다.

정치인 테마주와 비슷한 현상이 암호화폐 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폴리티슬롯사이트 지니(PolitiFi)’라고 불리는 밈코인이 대거 생겨나 급등락을 되풀이하고 있다. 밈코인은 일시적인 유행을 추구하는 코인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정치인이 결합된 게 폴리티슬롯사이트 지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 직전인 17일 내놓은 ‘오피셜트럼프 코인’이 대표적이다. 하루 만에 수백 배 뛰었으며 사흘 뒤 국내 코인거래소에서도 거래가 시작됐다.

트럼프처럼 정치인이 직접 코인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조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 이방카 코인처럼 대부분 제3자가 만든다. 국내에서도 허락받지 않은 윤석열 코인, 이재명 코인이 여럿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인 회사들이 밈코인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누구라도 익명으로 쉽게 코인을 뚝딱 만들수 있어 가능한 일이다. 영국 슬롯사이트 지니낸셜타임스(FT)는 다른 사람이 만든 트럼프 모방·스팸 코인만 700종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폴리티슬롯사이트 지니는 출시하는 사람이 큰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거래하는 사람은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코인 자체의 실체가 없는 데다 뒤이어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 폭락할 수밖에 없어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는 비트코인조차 “향후 10년 안에 제로(0)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이 예언이 맞는다면 폴리티슬롯사이트 지니는 파국 확률이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