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조작된 행복, 가려진 진실…육아 슬롯 '두 얼굴'
보이는 삶과 실제 삶은 다를 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모습들은 일종의 ‘만들어진 삶’이다. 스마트폰과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표정을 속이고 감정을 감춘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본 삶이 가짜였다는 것이 드러날 때, 그것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023년 말 25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미국의 유명 육아 전문 슬롯가 아동 학대범으로 드러나 세상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여섯 명의 자녀를 둔 엄마이자 슬롯인 루비 프랭크는 유튜브 채널 ‘8 패신저스(8 Passengers)’를 운영하며 각종 육아 관련 콘텐츠를 올렸다. 엄격한 육아를 강조하면서 아이들을 가혹하게 벌주는 장면이 종종 등장해 일부 누리꾼의 반발을 샀지만, 화면 속의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루비 프랭크는 결국 아동 학대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엄마의 집(The House of My Mother)은 아동 학대 혐의로 수감된 루비 프랭크의 큰딸 샤리 프랭크가 쓴 책이다. 루비가 슬롯를 시작했을 때 샤리는 열한 살이었다. 루비가 만든 영상은 매일 아침 6시에 올라왔고, 채널의 인기는 놀라울 정도로 급상승했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자녀들을 향한 루비의 비밀스러운 학대는 더욱 심해졌다.

책에는 루비와 그가 고용한 상담전문가 조디가 자행한 무자비한 징계와 학대에 대한 고발이 이어진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 경험한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지난 10년간의 아픈 기억이 소개된다. 샤리는 평범한 사람이 평생 겪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을 이미 겪었다. 그래서일까. 샤리의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성숙하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조작된 행복, 가려진 진실…육아 슬롯 '두 얼굴'
샤리의 어린 시절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6명의 자녀를 키우는 일상을 슬롯브를 통해 소개하던 루비는 유명세에 취해 있었고, 큰딸인 샤리는 자기애주의자인 엄마의 장난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었고, 카메라 앞에서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다. 심지어 속옷을 고르는 장면까지 카메라에 담겼다. 샤리는 8학년(한국의 중2)이 돼서야 자신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혐오와 절망감에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모든 주도권을 쥔 엄마의 폭주를 멈출 수 없었다.

샤리는 자기 가족에게 벌어진 충격적인 슬롯을 책을 통해 낱낱이 밝히며 학대를 자행한 루비와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모독하기보다는 그들을 루비와 케빈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녀를 항상 루비라고 부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결코 나에게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조작된 행복, 가려진 진실…육아 슬롯 '두 얼굴'
샤리의 고백을 통해 독자들은 조회 수를 높이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슬롯을 포장하는 인플루언서 문화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 그녀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약혼 소식을 발표하면서 그것이 마지막 사생활 공유라는 사실을 밝혔다. “나는 오랫동안 내 목소리와 주체성을 빼앗겼지만, 이제부터는 단호하게 나설 것입니다. 결혼, 남편, 그리고 미래의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겁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