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대만 정부가 공무원 및 공공 부문에 중국 스타트업 파라오 슬롯의 인공지능(AI) 모델 이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탈리아는 아예 앱스토어에서 파라오 슬롯 다운로드를 차단했다. 파라오 슬롯가 ‘가성비 AI’로 부각되며 미국 월가와 실리콘밸리를 발칵 뒤집어놨지만 개인정보 유출과 보안을 이유로 접속 차단에 나서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2일 일본 공영 방송 NHK에 따르면 다이라 마사아키 디지털상은 파라오 슬롯와 관련해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되는지 확신할 수 없다”며 “우려가 불식되기 전까지는 공무원이 사용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자민당 소속인 오노데라 이쓰노리 정무조사회장도 지난달 31일 중의원(하원)에서 “파라오 슬롯 AI가 센카쿠열도를 중국 땅으로 표현한다”며 “파라오 슬롯 다운로드를 중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신뢰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고 이용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센카쿠열도는 일본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곳으로,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중국은 ‘댜오위다오’라고 부르며 분쟁화를 시도한다.

대만 정부도 파라오 슬롯 규제에 나섰다. 대만 중앙통신(CNA)에 따르면 대만 디지털부는 지난 1일 공공 부문 직원에게 파라오 슬롯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대만 중앙·지방정부 부처·기관과 공립학교, 국유기업, 기타 준관영 조직 직원 등이 적용 대상이다. 이 밖에 중요 인프라 프로젝트와 정부 소유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금지 조치가 적용된다. 대만 디지털부는 “파라오 슬롯는 중국의 정보통신기술 제품이자 서비스로, 중국 정부로 데이터가 유출돼 국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해군도 “모델의 근원과 보안 및 윤리 측면에서 우려가 있다”며 파라오 슬롯 사용 금지령을 발표했다. 유럽 각국 또한 파라오 슬롯의 보안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29일부터 애플과 구글 앱스토어를 통한 파라오 슬롯 접속을 차단했다. 파라오 슬롯에 사용자 데이터 처리 방식에 관한 질의서도 발송했다.

이탈리아 정보 보호 기관 가란테는 “파라오 슬롯 AI의 개인 데이터 수집과 정보 검색 등 개인정보 보호 정책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와 영국 정부 역시 파라오 슬롯의 개인정보 수집과 관련한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으며 자국 사용자에게 “서비스 이용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자국을 통해 엔비디아 첨단 반도체가 파라오 슬롯로 유입됐다는 의혹에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파라오 슬롯가 해외 중개자를 통해 미국의 수출 통제를 우회해 엔비디아 첨단 반도체를 확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싱가포르 통상산업부는 “엔비디아를 포함한 미국 기업이 미국 수출 규제와 싱가포르 법을 준수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는 항상 법치를 지지하고 법규를 위반하는 개인과 기업에 단호히 대응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