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레스타의 영롱한 소리에 맞춰 클라라 역의 슬롯 꽁 머니리나 이유림(유니버설슬롯 꽁 머니단 솔리스트)이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다른 무용수보다 보폭이 큰 덕분에 이어지는 동작이 더 아름답고 당당해 보였다. 작은 디테일이 달랐던 그의 춤 덕에 수도없이 봤던 '호두까기 인형'이 새로웠다. 호두까기 왕자 임선우(드미 솔리스트)도 부상을 딛고 훨훨 날았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1세대 빌리로 이름을 알렸던 소년은 어느새 관객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슬롯 꽁 머니리노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차세대 슬롯 꽁 머니 스타들이 만든 환상 동화 '호두까기 인형' [리뷰]
호두까기 인형은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작곡하고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슬롯 꽁 머니마스터였던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와 대본을 담당했으며 프티파의 건강이 악화된 뒤 제2 슬롯 꽁 머니마스터였던 레프 이바노프가 안무를 완성한 작품이다. 초연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오늘날 매년 연말이면 세계에서 공연되는 연말 스테디 셀러가 됐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슬롯 꽁 머니 공연을 많이 접한 사람이라면 '호두까기 인형'으로 감동을 크게 받기란 쉽지 않다. 매년 똑같은 음악과 똑같은 춤, 드라마 요소가 적은 플롯 때문인지 저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선입견과 달리, 지난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유니버설슬롯 꽁 머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이유림과 임선우라는 슬롯 꽁 머니단 기대주들의 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예전부터 두 사람은 춤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파트너로 서는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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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대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날, 마침 눈이 내렸다. 무대 위 두 사람은 동화 속 인물들처럼 팔랑거렸다. 1막 후반부 눈송이들 사이에서, 2막 꽃잎들 사이에서 '나부끼며' 춤을 췄다. 팔과 다리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선, 가볍고 높은 점프는 호른 등 금관악기의 묵직한 소리와 대조되며 객석의 감정을 더욱 고조시켰다.

유니버설슬롯 꽁 머니단은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바실리 바이노넨 버전(마린스키 극장 계승)으로 공연을 올리고 있다. 줄거리와 상관없이 볼거리로 삽입되는 2막 디베르티스망에서도 허투루 지나가는 장면이 없다. 스페인춤이나 아라비아춤, 중국춤의 곡들은 음악을 리드하는 악기가 달라서 춤의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바이노넨 버전 안무는 그 차이를 더욱 극명히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호두까기 왕자로 분한 임선우는 본인이 10대시절 연기했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처럼 무대를 누볐다. 최근 몇년간 큰 부상으로 전막 주연으로서 무대를 기대하긴 어려웠던 인물. 그런 그가 돌아온 이번 무대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백조의 호수에 출연해 점프하던 마지막 장면이 고스란히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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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활약도 컸지만 군무의 역할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게 만들었다. 흩날리는 눈송이를 표현한 1막의 '눈꽃송이춤'과 핑크빛 꽃잎을 연상케하는 2막 '로즈왈츠'는 칼군무와 화려한 무대 연출과 어우러진 백미였다. 특히 로즈왈츠 군무 속 슬롯 꽁 머니리노 가운데, 다른 공연날의 호두 왕자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들은 군무속에서 군무를 리드하며 베테랑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어쩜 저렇게 쉽게 춤을 추지?" 커튼콜에서 연주되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함께 박수를 치던 한 관객의 말이 들렸다. 무용수들의 춤이 쉽게 보여질수록 무용수들은 사력을 다해 춤추고 있다는 사실, 슬롯 꽁 머니는 알고보면 실력 차이가 분명히 보이는 냉정한 예술이라는 걸 일깨워준 한 마디였다. 공연은 30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