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쌓인 이미지를 그리며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죠"
서울 청담동 거리에 2022년 자리를 튼 미국 갤러리 글래드스톤. 한국에서 조명받지 않은 작가들을 선보이며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최근 이곳에서 개인전 ‘더블 제미니’를 열고 있는 미국 오하이오 출신 작가 리처드 알드리치(사진)도 이번이 첫 한국 전시다.

1975년생인 알드리치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미술학도가 아니었다.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생 알드리치의 관심을 끈 건 예술이었다. 학교 건물을 뒤져 아무도 쓰지 않는 작은 골방을 찾아내 그림을 그리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2003년부터 전업 작가가 됐고, 2010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 조각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처음으로 개인전을 통해 한국 관객을 만나는 자리이기에 그는 작품만큼 전시 구성에도 공을 들였다. 글래드스톤 서울의 지하와 지상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하나의 건물이지만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여겨지도록 구성했다”며 “전시 제목인 ‘제미니’가 뜻하는 쌍둥이자리를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드리치의 이야기처럼 갤러리의 두 층은 완벽히 다른 공간으로 꾸며졌다. 지상층은 햇빛과 흰색 색감을 활용해 밝게, 지하층은 회색 카펫과 어두운 조명을 이용해 차분하게 구성했다. 그는 “밝은 1층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밝은 나를 담았다면 아래층은 어두움과 고독을 가진 나의 내면을 풀어냈다”고 말했다.

알드리치는 게임, 만화, TV 등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이들 매체에서 일상적 이미지를 차용해 캔버스에 옮겨놓은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잠깐 쉴 때 하는 모바일 게임에서도 이미지를 빌려오는 등 나의 일상에 차곡차곡 쌓인 이미지를 그림으로 풀어낸다”며 “이미지를 그리며 나만의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음악은 알드리치의 작업을 넘어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알드리치는 “10대를 지나며 분출하는 감정을 음악을 통해 찾았다”고 했다. 이어 “그 ‘날것’의 감정은 미술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에도 관심이 많다. 조각과 회화를 항상 함께 선보이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도 조각과 캔버스 작품을 같이 놓았다. 지하에 설치한 작업이 그의 ‘조각-회화 공식’을 가장 잘 드러낸다. 큰 회화가 벽에 걸리고, 바닥에는 조각 3점이 놓였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