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이소
사진=다이소
패션 업체 한섬은 지난달 7~10일 ‘더블마일리지’ 행사를 했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를 평소 대비 두 배 적립해 주는 이벤트였다. 여간해선 세일하지 않는 타임, 마인, 시스템 등 한섬 브랜드를 연중 가장 좋은 조건에 살 수 있어 때마다 소비자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작년 같은 기간 행사에 비해 매출이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패션 업체 관계자는 “20~30% 할인해도 소비자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들어 가뜩이나 얼어붙은 내수 경기가 침체 수준을 넘어 ‘소비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12·3 계엄 사태’와 정국 혼란으로 부자도 지갑을 닫았다는 게 유통업계 하소연이다.

백화점 경기가 특히 심각하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의 지난달 매출은 0.7% 줄었다. 10월 3.2% 감소에 이은 두 달 연속 ‘역성장’이다. 매출 하락 방어를 위해 이례적으로 큰 규모의 세일에 나섰는데도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명품, 식품 등 일부 품목의 선방에도 주력인 여성 패션 부문이 크게 부진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날씨마저 춥지 않아 패딩과 코트 같은 고가 상품 판매량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고 있다”며 “재고가 쌓이면서 입점 패션 브랜드가 언제부터 할인 폭을 확대할지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증권가에선 신세계뿐 아니라 롯데, 현대 등 다른 주요 백화점도 4분기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한다. 배송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소비가 예상보다 훨씬 안 좋아 유통 전 업태에 걸쳐 성장 둔화가 확인된다”고 말했다.

e커머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지난달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중국 ‘광군제’ 등에 맞춰 대대적 세일을 벌였지만 대부분 목표치에 미달했다. 한 e커머스 관계자는 “지난 7월 티몬·위메프 사태 여파로 여행상품, 가전 등 고가 품목을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내실 경영에 나선 e커머스 업체들이 할인 쿠폰을 덜 뿌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소비심리가 악화한 가운데 불확실성이 커지자 가격 민감도는 더 높아졌다. 초저가 상품과 ‘떨이 상품’에만 소비가 몰리는 것이다. 다이소는 지난해 인기를 끈 ‘5000원짜리 플리스’에 이어 올해엔 맨투맨 티셔츠와 후드티를 선보였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도 선방 중이다. 지난달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6.2% 늘었다. 대형마트에선 뷔페에서 파는 메뉴를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델리(즉석조리식품) 코너’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안재광/양지윤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