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파운드리 1위" 내건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어쩌나…점유율 '한자릿수' 추락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시장 점유율이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2019년 이재용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회장(당시 부회장)이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한 뒤 반환점에 다다랐지만 파운드리 1위 업체 대만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게다가 TSMC가 내년 중 최첨단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제품 양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로선 더 이상 밀리면 안 되는 상황. 지난달 말 주요 고객사인 미국 대형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들을 상대할 인사로 ‘미국통’ 한진만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미주 총괄을 파운드리 사업부장으로 발령내고, 최고기술책임자(CTO) 직을 신설해 수율(양품 비율) 관리를 맡기는 등 사실상 ‘투톱’ 체제로 개편한 것은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영한 인사로 풀이된다.

9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직전 분기(11.5%)보다 2.2%포인트 하락한 9.3%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절대 1강’ TSMC 점유율은 2.6%포인트 올라 64.9%까지 치솟았다. 2위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와의 격차는 55.6%포인트로 확대됐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점유율은 10% 선이 무너지면서 집계를 시작한 2021년 이래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이 회장이 2030년 파운드리 1위를 선언한 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점유율은 한때 18% 내외까지 올랐으나 올해 들어 10%대 초반을 기록해왔다. 그러다 ‘비전 2030’의 반환점을 앞둔 시점에서 최악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트렌드포스는 “TSMC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제품, 인공지능(AI) 반도체 출시로 용량 가동률이 올라가고 웨이퍼 출하량이 증가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성숙 공정에서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심화가 가격 인하로 이어져 전 분기 대비 매출이 감소하고 점유율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처럼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 못지않게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인텔은 한 차례 철수했던 파운드리에 재진출한 뒤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수율 관리에 실패, 결국 지난 9월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공백을 SMIC가 치고 올라온 것이다.

SMIC는 3분기 점유율 6%로 올라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와의 격차를 3%대로 좁혔다. 중국 정부가 미국 제재에 맞서 SMIC에 막대한 보조금 등을 전폭 지원하는 데다 SMIC는 자국 스마트폰 제조사 등 고객사 확보가 상대적으로 쉬운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파운드리 점유율 하락에 대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계절적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했다”고 짚은 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모바일과 고성능 컴퓨팅(HPC), AI 및 자동차 애플리케이션(앱) 전력·성능·면적(PPA) 최적화에 중점을 두고 2나노 게이트 올어라운드(GAA) 공정을 발전시켜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앞서 2022년 최초로 차세대 공정인 GAA 기술을 도입했지만 아직 3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 수율 확보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도 인텔처럼 파운드리를 분사하거나 사업을 축소할 가능성도 점쳤으나 이 회장은 “(파운드리 분사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이례적으로 파운드리 사업부에 사장 2명을 배치해 투톱 체제로 전환한 것도 이런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해외 영업통’이란 평가를 받는 한진만 신임 파운드리 사업부장은 해외 고객사 수주에 힘쓰고, 공정 전문가로 알려진 초대 CTO 남석우 사장은 수율 문제 해결을 맡을 전망이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게 희망적으로 작용할 만한 ‘변수’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재집권으로 TSMC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이다. 또한 TSMC는 2나노부터 GAA 공정을 도입하는데,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3나노부터 GAA 공정을 도입해 시행착오 겪은 과정을 TSMC도 뒤늦게 겪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중국과 대만의 ‘양안 리스크’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TSMC가 2나노 GAA 공정 도입 후 수율 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다”며 “이 경우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TSMC를 대체할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는데 초미세공정 분야 TSMC의 ‘대체재’는 사실상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김봉구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