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한다더니"…'잠수' 후 새장가 든 배신男의 반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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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사파 ②
'추상미술의 아버지' 온라인 슬롯
그 뒤에 가려졌던 위대한 화가
가브리엘레 온라인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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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터지자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떠나갔습니다. 여자는 기다렸습니다. 남자의 말을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별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습니다. 이듬해 남자에게서 날아온 편지 한 통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직은 돌아갈 수 없어. 사정이 그렇게 됐어.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그리고 또다시 1년 뒤, 남자는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이제 일이 거의 다 정리됐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연말에는 갈 수 있을 거야.”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여자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렀습니다. 여자의 불안은 분노에서 걱정으로, 그리고 체념과 슬픔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자는 생각했습니다.‘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때는 혼란스러운 전쟁 통이었습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여자는 남자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소중히 보관했습니다. 황당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요.
“남자분의 물건들을 즉시 반환해주십시오.” 난데없이 나타난 변호사는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설명을 듣던 여자는 기가 찼습니다.남자가 3년 전에 27세 연하의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아이까지 낳았으며, 이제 여자와 함께 살던 집에 두고 온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것이었습니다.여자는 소리쳤습니다. “내가 무슨 물품 보관소야? 절대 못 줘!” 그렇게 소송전이 시작됐습니다.

사랑의 시작
1902년 독일 뮌헨의 팔랑크스 미술학교. 스물다섯 살의 학생 뮌터와 서른여섯 살의 선생 온라인 슬롯는 이곳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독일 상류층 집안 출신의 뮌터는 주관이 뚜렷하고 예술에 재능 있는, 화가를 꿈꾸는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여성이 다닐 수 있는 제대로 된 예술학교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취미 생활이라면 몰라도, 여자는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게 당시 사회 분위기였거든요. 하지만 온라인 슬롯가 설립한 이 학교는 달랐습니다. 온라인 슬롯는 여성을 차별하지도 않았고, 뮌터의 재능을 인정해 줬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온라인 슬롯가 유부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슬롯는 뮌터를 설득했습니다. “아내와는 이미 끝난 사이나 다름없어. 곧 이혼할 거야.”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도 온라인 슬롯의 이혼 요청을 군말없이 받아들여줬으니까요. “당신 앞에서 날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하며 약혼반지를 건네는 온라인 슬롯에게, 뮌터는 마음을 허락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연애는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슬롯는 깨달았습니다.“그래, 우리가 원하는 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야. 말로 표현할 수도,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는 감정과 생각을 그림에 담는 거야.”그 순간 기억 속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온라인 슬롯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추상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뮌터 역시 온라인 슬롯가 있었기에 자신만의 화풍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온라인 슬롯의 영향을 받아 뮌터는 색에 자신의 감정을 담았습니다. 자연에서 따온 풍경에 사진을 찍었던 경험을 살려 과감한 구도를 짜고, 강렬한 색과 단순화된 형태로 따뜻한 감성을 입히면서 뮌터의 독창적인 그림은 탄생했습니다.

빛나던 날들, 그리고 그림자
1909년, 두 사람은 연애 7년 만에 마침내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나가는 두 사람은 찬란하게 빛났습니다.그 빛은 프란츠 마르크를 비롯한 주변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함께 끌어들였습니다.서로의 생각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온라인 슬롯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화가들은 ‘그림은 추상적일수록, 즉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수록 순수하고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뮌터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화가들은 ‘그래도 그림에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은 조금 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실적으로 사진처럼 그린다고 해서 좋은 예술 작품은 아니다’는 데는 모두 공감했습니다.이들은 한데 모였고, 자신들을 ‘청기사파’로 불렀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온라인 슬롯에게 실제로 있는 장면이나 물건을 그리는 건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중간 유통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예컨대 화가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고 해 봅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관객들은 그림을 보고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온라인 슬롯는 그게 싫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순수한 선(線)과 색(色)만으로 보는 사람의 영혼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중간 유통을 생략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직거래’하자는 겁니다.오늘날 현대미술의 주류가 된 온라인 슬롯 탄생이었습니다.


이 무렵 온라인 슬롯와 뮌터의 관계에도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이혼 절차만 마무리되면 바로 당신과 결혼하겠다”던 온라인 슬롯.하지만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도 온라인 슬롯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온라인 슬롯는 뮌터와 자신의 성격이 아주 다르고, 그 차이를 결코 메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뮌터가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이었다면 온라인 슬롯는 갈등을 극도로 회피하는 성격이었거든요. 뮌터가 온라인 슬롯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이유입니다. “나는 당신이 없을 때는 외로워요.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어요.당신과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거예요.”

‘비열한 무시와 침묵’
1914년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은 예술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청기사파의 핵심 화가들이 전장에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행히도 온라인 슬롯는 전쟁에 끌려가진 않았지만, 독일의 적국인 러시아 사람이었기에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요.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온라인 슬롯는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도 어느덧 6년. 제1차 세계대전에 더해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혁명까지 일어난 상황이었습니다. 분노와 우울에 시달리던 뮌터는 마침내 체념했습니다. ‘소식이 없는 걸 보니, 난리 통에 세상을 떠났나 봐.’ 혼자가 된 뮌터는 함께 살던 집에서 온라인 슬롯가 남긴 소중한 그림과 물건들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곤 했습니다.

뮌터는 직접 찾아오지도 않고 변호사를 보내는 온라인 슬롯를 맹비난했습니다. 뮌터는 온라인 슬롯의 행동을 두고 “비열한 무시와 침묵”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정 공방 끝에 뮌터는 온라인 슬롯가 남겨둔 짐의 극히 일부만 돌려주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림의 대부분은 뮌터의 소유로 남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엔
쓰라린 배신과 좌절에도 뮌터는 삶의 균형을 잃지 않았습니다. 뮌터는 온라인 슬롯와 헤어진 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오히려 개인적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더욱 과감한 표현을 시도했습니다. 새로운 사랑도 만났습니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또다시 급격하게 바뀌었습니다. 독일의 권력을 잡은 나치는 자신들의 사상을 담은 이해하기 쉬운 미술만을 권장하고, 그렇지 않은 추상예술 등은 ‘퇴폐미술’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온라인 슬롯도 나치의 탄압 대상 중 하나였습니다. 1933년 탄압이 시작되자 온라인 슬롯는 프랑스로 도피했고, 1944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냉담한 남자였다.” 세상을 떠난 온라인 슬롯를 뮌터는 이렇게 건조하게 회고했습니다.
왜 뮌터는 사랑을 배신한 온라인 슬롯와 자신을 ‘좀나방’이라 불렀던 청기사파 작가들의 작품을 소중히 보관하고 세상에 내놨을까요. 개인적인 원한만 생각하면, 이 작품들을 모두 불태워도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작품을 돌려달라는 온라인 슬롯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림들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었던 건 분명 일종의 복수였습니다. 예술가에게 작품은 자식과도 같은 것. 자신이 전성기에 그린 작품들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은 분명 온라인 슬롯에게도 큰 고통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뮌터는 이 작품들이 영영 사라지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온라인 슬롯에게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는 가장 빛났던 시기 두 사람의 영혼이 담겨 있었고, 당시 그들이 꿈꾸었던 예술의 혁명이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추상미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내는 예술. 뮌터는 온라인 슬롯를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작품 속에 담긴 시대의 꿈과 예술혼, 젊은 나날 아름다웠던 기억을 이렇게나마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겁니다.

2회에 걸친 청기사파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청기사파의 맥을 잇는 화가 파울 클레의 이야기는 추후 출간될 책(3권)에서 다루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가브리엘레 뮌터(보리스 폰 브라우히취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Gabriele Münter: The Years of Expressionism 1903~1920 (Reinhold Heller), Wassily Kandinsky and Gabriele Münter: Letters and Reminiscences 1902~1914 (Annegret Hoberg), Kandinsky: A Retrospective(Angela Lampe, Brady Roberts), 온라인 슬롯와 청기사파(지빌레 엥겔스, 코르넬리아 트리슈베르거 지음, 홍진경 옮김) 바실리 온라인 슬롯(하요 뒤히팅 지음, 김보라 옮김) 청기사 20세기 예술혁명의 선언(바실리 온라인 슬롯, 프란츠 마르크 등 지음, 배정희 옮김), Kandinsky, Munter and the Blue Rider(테이트 펴냄)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6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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