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에너지저장장치(메이저사이트) 시장이 미국에서 급팽창하고 있다. 메이저사이트와 한 묶음으로 판매되는 태양광 패널 값이 1년 사이 반 토막 난 데다 메이저사이트 핵심 부품인 배터리 가격도 15% 떨어진 영향이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침체)으로 고전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공장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을 메이저사이트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국내 배터리 3사도 ‘황금시장’ 잡기에 나섰다.

○메이저사이트 수요 예상 이상으로 늘어나

K배터리 3사 "메이저사이트로 전기차 부진 극복"
20일 에너지 분야 글로벌 리서치업체인 우드매켄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 신규 설치된 메이저사이트는 2만5978㎿h 규모로 1년 전(1만3163㎿h)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2018년(829㎿h)과 비교하면 5년 만에 30배나 불었다. 분기별로 보면 지난해 1분기 1781㎿h에 불과하던 설치량이 4분기에는 1만2351㎿h로 7배가량 늘어났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메이저사이트 시장인 미국에서 관련 수요가 폭발한 것은 제품 가격 하락과 태양광발전 설비 확대가 맞물린 덕분이다. 산업용과 가정용을 막론하고 메이저사이트는 태양광 또는 풍력발전기 옆에 반드시 따라붙는 필수품이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어딘가에 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패널 가격은 중국산 저가 제품이 쏟아지며 작년 초 W당 20~25센트에서 현재 10센트 초반으로 급락했다.

메이저사이트에 들어가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가격도 같은 기간 15% 하락했다. 이 덕분에 ‘태양광 발전시설+메이저사이트’ 묶음 가격은 1년 동안 20~30% 떨어졌다. 미국 데이터리서치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680억달러(약 93조원)이던 미국 메이저사이트 시장 규모는 2030년 2000억달러(약 273조원)로 커진다.

○메이저사이트에 힘주는 배터리 3사

현시점에서 메이저사이트 시장은 완벽한 ‘중국 세상’이다. 한국이 잘하는 삼원계(NCA 또는 NCM) 배터리보다 30~50%가량 싼 LFP 배터리를 앞세워 세계 시장의 90%를 손아귀에 넣었다. 높은 출력과 오랜 주행거리가 필요한 전기차와 달리 고정된 장소에 설치되는 메이저사이트는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삼원계 대신 LFP 메이저사이트로 ‘맞불’을 놓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LFP 메이저사이트 개발을 가장 먼저 완료한 LG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간다. 삼성은 2026년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수주 문의도 늘고 있다. LG는 미국에서 가정용 태양광 패키지 상품을 준비하고 있는 한화큐셀 물량을 수주한 데 이어 미국 유럽 일본 등 4~5개 기업과도 수주를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물량을 맞추기 위해 미국 공장의 전기차용 생산라인을 메이저사이트라인으로 전환하는 걸 추진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고 있는 연산 17GWh 규모의 메이저사이트 배터리 공장 완공(2026년 목표)을 기다렸다간 손님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메이저사이트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만큼 생산라인을 더 갖춰야 한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LG는 가정용 메이저사이트 배터리 개발에 나서는 등 5개가 넘는 메이저사이트 관련 연구개발(R&D)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다.

삼성SDI 역시 LFP 메이저사이트 생산을 늘릴 예정이다. 2026년부터 생산할 LFP 배터리에서 전기차 비중을 줄이고 메이저사이트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LFP 배터리 양산도 전기차에 앞서 메이저사이트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SK온은 2026년 LFP 메이저사이트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에 메이저사이트 LFP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3사가 메이저사이트 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건 그동안 올인한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해진 것도 한몫했다. 배터리사들은 전기차 캐즘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길게는 3년 이상까지 전기차 공급 과잉이 유지될 것이란 내부 분석도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캐즘으로 떨어진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메이저사이트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