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잘 보이게"…'건당 수십억' 몸값男, 어떻게 몰락했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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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적인 화려함을 그린
장 오노레 슬롯 머신
달콤하지만 씁쓸했던 18세기
화려한 슬롯 머신 속 숨겨진 이야기
장 오노레 슬롯 머신
달콤하지만 씁쓸했던 18세기
화려한 슬롯 머신 속 숨겨진 이야기

“아, 예…. 다리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네를 미는 사람도 있어야겠는데…. 그렇지. 주교님으로 하는 게 좋겠군.”
“예…. 예?”
어처구니없는 의뢰인의 요구에 화가의 표정은 순간 일그러졌습니다.‘주교는 도대체 왜 그려달라는 거야?’하지만 화가는 곧바로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 주교님요.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갖다 드리면 될까요?” 의뢰인이 슬롯 머신의 대가로 제시한 액수는 4만 프랑(현재 수십억 원 가치). 그리고 화가는, 의뢰인이 요구한 슬롯 머신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 그려낼 수 있는 남자였습니다.

화가의 이름은장 오노레 슬롯 머신(1732~1806). 오늘은 그가 그린 화려한 슬롯 머신과 삶, 18세기 로코코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화려하고 달콤했던, 로코코

로코코 슬롯 머신이 등장한 건 18세기 프랑스의 상류층들이 그만큼 돈이 많고 사치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식민지에서는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왔고, 극도로 불공평한 사회 구조 때문에 이런 부(富)는 귀족 등 상류층에게만 집중됐습니다. 덕분에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아진 귀족들은 먹고, 마시고, 연애하고, 쇼핑하고, 그걸 자랑하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았습니다. 민중들이야 죽을 맛이었지만요.

덕분에 프랑스 상류층의 문화는 화려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슬롯 머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보다 더 화사해지고 인간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게 됐습니다. 유럽 다른 나라들도 프랑스의 뒤를 따랐습니다. 프랑스는 ‘가장 강하고 세련된 최고 선진국’이었으니까요.
독일(프로이센)의 궁정에 갔을 때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남긴 말을 보면, 프랑스가 유럽 전반의 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왕은 프랑스어를 씁니다. 궁정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졸병들이 하는 말이나 말(馬)의 울음소리를 빼면 이곳에서는 오직 프랑스어만 들립니다.”
소심한 청년의 황소고집

슬롯 머신는 착하고 겸손한 청년이었습니다. 조금 소심한 면도 있었고요. 그런데 가끔 고집을 부리면 그걸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주로 그림에 관한 고집이었습니다. 무난하게 취업한 그가“슬롯 머신이 좋다”며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슬롯 머신만 그리다가 해고된 것도 이런 고집 때문이었습니다.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어머니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말려도 소용없을 테고, 애가 원하는 대로 화가를 시켜야겠어.’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하나였던 부셰에게 데려갔습니다.
“내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려면 일을 도와줘야 하는데…. 생초보는 쓸 데가 없어.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다른 화가를 소개해줄게.” 부셰는 슬롯 머신를 거절하면서 다른 선생님을 알아봐 줬습니다. 부셰가 소개한 선생님은 정물화 전공으로, 친절하고 꼼꼼하게 기초부터 그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채소를 그려 봐. 채소 정물을 마스터해야 다른 걸 잘 그릴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슬롯 머신의 고집이 다시 한번 튀어나오고 말았습니다. ‘빨리 그림을 배워야 하는데, 양파 따위나 그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니!’ 슬롯 머신는그리라는 채소 정물은 안 그리고, 슬롯 머신 배우러 가는 길에 있는 성당에 들러 그곳의 슬롯 머신들을 베껴 그렸습니다.“정신 나간 놈이군. 네 맘대로 할 거면 너 혼자 그리거라.” 결국 슬롯 머신는 선생님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스승들을 만나다
슬롯 머신는 스승 복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셰의 화실에 들어간 지 4년째인 1752년, 그가 20살이 되던 해에 찾아온 전환점도 스승 덕분이었습니다. “로마 그랑프리에 작품을 내 봐.” 부셰는 슬롯 머신에게 말했습니다.로마 그랑프리는 당시 유럽 젊은 화가들의 ‘꿈의 대회’. 우승자에게는 서양 슬롯 머신의 본고장 로마에 있는, 말하자면 ‘프랑스 국립 슬롯 머신 아카데미 로마 캠퍼스’에서 3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습니다.하지만 슬롯 머신는 주저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제가…. 저는 미술 아카데미 출신도 아닌걸요.” 그럴 만도 했습니다. 슬롯 머신와 달리 당시 대부분의 화가는 미술 아카데미 출신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같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데, 경쟁자들은 대부분 명문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슬롯 머신는 검정고시 출신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셰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상관없어. 넌 내 제자다.”그리고 부셰의 말대로, 슬롯 머신의 ‘우상에게 제사 지내는 여로보암’은 그 해 로마 그랑프리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림도 제대로 안 그리고 침울해져 있던 슬롯 머신에게, 로마 캠퍼스 책임자였던 나투아르는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너, 그림이 아주 엉망이야. 로마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놈 맞아? 아닌 것 같은데. 프랑스로 당장 돌아가. 네놈은 재능이 없어서 돌려보낸다고 파리에 편지를 보내야겠어. 썩 꺼져.” 호통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든 슬롯 머신는 싹싹 빌었습니다. “제발 여유를 주세요. 3개월만 기다려주시면 실력을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슬롯 머신는 필사적인 노력 끝에 훌륭한 그림들을 그려내는 데 성공합니다.
사실 이는 슬롯 머신를 위한 나투아르의 ‘충격 요법’이었습니다. 나투아르는 처음부터 슬롯 머신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슬롯 머신에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그의 그림 주제를 세심하게 코치해주고 생활을 돕는 등 섬세한 지원을 해줬고, 프랑스에는 슬롯 머신에 대해 “기대할 만한 재능”이라는 호평이 담긴 편지를 보냈습니다.이런 도움 덕분에 슬롯 머신는 유학을 1년 연장해 총 4년간 로마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섬세한 색채 감각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꽃피우고 허무하게 지다

확실히 살롱 전시는 별로 돈이 안 됐습니다. 귀족들의 주문을 받아 그리면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변신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슬롯 머신는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심각한 그림, 폼 잡는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살롱에서 요구하는 신화나 역사 속 장면들처럼요. 대신슬롯 머신는 즐겁고 상쾌한 그림을 좋아했습니다.그는 우울, 병, 그리움과 같은 것보다는 행복, 생동감, 기쁨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오만 상을 찌푸리고 수천 년 전 신전의 대리석을 묘사하기보다는 미소를 지으며 신선한 공기와 산들바람, 분수와 폭포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이 분야의 일인자가 됐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슬롯 머신의 인생이 가장 밝고 화려했던 이 시기. 그의 삶은 곧 로코코였고, 로코코가 그의 삶이었습니다. 슬롯 머신의 삶을 비추는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던 시기, 그 정점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영원하지 못했습니다.모든 유행이 그렇듯 로코코 슬롯 머신의 인기도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56살이던 1788년 아끼던 딸이 세상을 떠난 건 슬롯 머신에게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슬픔이 너무 커서 붓을 도저히 잡을 수 없었던 그는,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용되는 데 필요한 작품을 기한 내에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교수 임용위원회는 슬롯 머신의 행동을 “무책임하고 변덕스럽다”고 비난하며 그의 임용을 취소했습니다.

로코코 슬롯 머신은 몰락하고, 도덕적인 내용과 깔끔한 선의 신고전주의가 슬롯 머신계의 대세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 우아하고 세밀하다며 로코코 슬롯 머신을 칭송했던 사람들은 이제 똑같은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속한 데다 경박하고, 퇴폐적이고, 실내 장식용에 불과할 뿐 예술성은 부족하다고요.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앞에 슬롯 머신는 무릎을 꿇고 굴복했습니다. 그는 붓을 꺾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려도 사줄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슬롯 머신가 모아놓은 재산도 혁명으로 모조리 사라져버려서,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먹고 자며 박물관을 관리하는 일자리를 인맥을 통해 겨우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잘렸습니다. 그의 말년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더운 날 길거리를 헤매다 카페에서 얼음을 먹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의심스러운 기록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영원히 남은 화려한 순간

그래서 슬롯 머신의 삶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애잔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개인의 발버둥은 역사와 사회의 큰 변화 앞에서는 한없이 하찮다는 사실, 끊임없이 변화를 직면하는 우리 역시 슬롯 머신와 마찬가지 신세라는 점 때문입니다. 허무하기도 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왕의 목이 떨어지고, 그 화려했던 로코코 문화도 파멸하고, 다시 그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의 목이 떨어지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라는 사실을 역사는 말해주니까요.

덕분에 우리는 슬롯 머신의 작품에서 다른 어떤 화가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동감과 화려함, 관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파멸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던 18세기의 프랑스 귀족 사회를 영원히 기억하는 증거물로 남았습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기사는 슬롯 머신와 관련해 가장 권위있는 서적인 'Fragonard'(Pierre Rosenberg)를 중심으로 'Fragonard. Biographical and Critical Study'(Jacques Thuillier), 'Fragonard's Allegories of Love'(Andrei Molotiu), The Wallace Collection 홈페이지의 '그네' 부분 설명등을 참조했습니다.
*책 출간 임박, 해외 출장 일정 때문에 17일과 24일에는 휴재합니다. 연재는 3월 2일부터 재개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슬롯 머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5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슬롯 머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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