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톱에는 물감 때가 말라붙어 있다. 오랜만에 개인전을 준비한 만큼 '마음먹고 함께 한' 간담회 자리. 수더분한 표정에 관조의 정서를 담은 목소리와 오래 익은 감 같으면서도 갓 쪄낸 떡살 같은 이미지….


15년 이상 '생명'을 화폭에 옮기고 있는 화가 김병종씨(52·서울대 미대 교수)의 손톱은 그래서 더 푸근하고 믿음직하다. 그 끝에서 먹과 채색의 목숨이 자라나고 닥종이 위의 꽃과 나비들이 숨쉬며 교감한다.


근 1년6개월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오는 24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열리는 '김병종-생명의 노래전'에서 그는 '생명'연작 중 근작 40여점을 선보인다.


빨간 꽃과 학이 어우러진 '화안(花眼)' 등에서는 전작보다 더 화사한 자태가 느껴진다. 그러나 역시 그의 미덕은 '분청사기의 수수덤덤 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화면'이다. 분청사기 빛을 닮은 듯 뽀얀 화면 위에 먹이나 푸른 색으로 학,산,물결,물고기 등을 그려 넣는 작업. 약간은 허하게,미완성인 듯 드문드문 비워 놓고 그린 것들이 '상생의 미학'을 피워낸다.


작업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만든 닥종이 판 위에 한지를 풀처럼 쑤어 붙여 부조의 느낌을 만든 뒤 그 위에 먹과 동양화 안료를 몇겹씩 바른다. 주요 소재인 꽃과 나무,나비,닭,물고기 등이 화면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도도 그렇다.


이들 화폭 속의 생명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도 눈을 찡긋 마주친다. 이는 내면적인 교감을 통해 따뜻함을 주고받는 '생명' 특유의 김병종 사상과 통한다. 풍요로운 원숙미도 여기에서 나온다.


한동안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바보 예수' 연작을 그렸던 그가 '생명의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89년 연탄가스 중독이었다고 한다. 사경을 헤매며 두 달 넘게 입원했다가 회복 후 어느날 등산길에서 우연히 노란 들꽃을 발견하고 크게 감동받았다. 이후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무심히 보아넘기지 않았다. 전시회에 맞춰 첫 화보집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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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