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홀리데이 인 서울'호텔 뒤쪽에 있던 마포 주공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지금은 삼성아파트로 재건축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지난 62년 건설 당시에는 대통령이 축사를 할 만큼 남한이 이제 이 정도로 잘 산다는 것을 과시하는 정치적 상징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90년 재건축 소식은 큰 화제였다. 15년 전의 얘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이 일이 우리 아파트 역사에서 전환점이 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전후로 아파트건설의 주도권은 주공에서 민간업체로 넘어갔다. 실제 과천(84년) 상계(89년) 건설사업까지는 주공의 역할이 컸지만 분당 일산 등 신도시 건설을 포함,90년대 이후로는 민간기업들이 사업을 주도했다.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기까지는 민간의 발전이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아파트 이름이 톡톡 튀게 달라진 것도 건설업체들의 성장이 가져온 변화다. 밋밋하게 'OO동(洞) OO아파트'라고 부르기보다야 장미ㆍ매화ㆍ백마마을같은 단지 이름이 훨씬 운치가 있고 낫다. 이제는 아파트마다 자기 이름(브랜드)까지 갖고 있다. 민간의 창의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분당 등 신도시가 건설된 지 10년이나 지난 지금 판교에 지어지는 아파트 이름짓기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는 것은 딱한 일이다. 공영개발로 전체 2만9350가구 중 63.9%를 짓게 된 주공아파트가 그 대상이다. 주공이 집을 직접 짓는 게 아니라 민간업체들이 도급을 받아 건설하는 것이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 주공측은 시공업체인 민간의 브랜드와 자신의 브랜드를 섞어 쓰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하지만,애당초 이런 문제가 왜 생겼는지는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서민과 중상류층을 동시에 고려해야하는 판교를 공영개발키로 한 배경과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필요성을 부인하려는 뜻도 없다. 그렇지만 주공이 적정이윤을 보장하는 '넉넉한' 건축비를 제시하겠다면서 굳이 민간업체에 도급을 주는 군림하는 모양새로 민간의 힘을 빌려 판교 아파트를 짓는 것이 최선책인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지금 주공 스스로가 자신이 지을 아파트의 품질문제까지 걱정하고 있다. 이런 형편이라면 당초부터 원가연동제든 아니면 보다 분명한 분양가상한제든 간에 민간업체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모색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주공을 판교문제의 '해결사'로 내세우다 보니 주공의 재원 조달을 도울 수밖에 없어 다른 쪽에서 문제를 키우는 부작용도 표면화되고 있다. 공기업인 주공은 '돈벌이'를 위해 전국 도처에서 단지내 상가를 일반국민에게 입찰가의 두세 배에 팔고 연내 업체들에 매각하려던 공공택지를 자신의 아파트 분양사업으로 쓰겠다며 계획을 취소해버렸다. 건설교통부의 행보도 꼬이고 있다. 건교부는 지난 4월 주공에 전용면적 25.7평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길을 터줬다. 임대주택 건설에 따른 적자보전책이라지만 마치 시계바늘을 80년대로 되돌린 꼴이다. 해법은 정도(正道)에서 나온다. 헝클어진 일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해법을 찾아보자. 문희수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