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불법 감청을 통해 국내 정치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확인돼 파문이 확산될 조짐이다. 9일 검찰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국내담당 차장(2000년 10월~2001년 11월)이었던 김은성씨(구속)는 2000년 12월께 국정원 8국 직원들에게 당시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의 퇴진 문제를 놓고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 간 이뤄진 전화 통화를 불법 감청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추측으로만 나돌던 국정원의 정치사찰이 확인된 것이다. 도청수단으로는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인 'R-2'와 이동식 휴대폰 감청장비인 '카스'가 사용됐다. 김씨는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를 연결시켜준 전화국 관계자들에게 매월 50만원씩 주고 관리하는 한편 도청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을 집중적으로 불법감청 하도록 지시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와 관련,김씨는 지난 8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국가통치권 보존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도청했을뿐 정치사찰 목적은 아니었다"며 "도청은 전임자에게 이어 받은 것이고 내가 없애자고 할 위치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도청을 둘러싼 각종 의문점을 규명하기 위해 조만간 김씨가 재직할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신건씨를 이르면 이번 주에 소환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들을 대상으로 김씨에게 도청 내용을 보고받고 청와대에 전달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