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규칙에 나타난 '볼 빨간 미라이짱'

日 대표 사진작가 카와시마 코토리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서 첫 내한 전시회
양익준 감독도 피사체로 등장

7개월간 을지로 일대 촬영한
150여점 최초 공개
“여기 있는 게 꿈같아요” 사진작가 카와시마 코토리(Kawashima Kotori)가 자켓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종이를 펼친 후 서툰 한국어로 한마디를 전했다. 지난 24일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첫 한국 개인전 개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의 진심 어린 한 마디는 장내를 따뜻한 웃음으로 물들였다. 카와시마의 소탈한 모습은 그의 작품 세계와도 닮아 있다.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것, 그의 사진이 가진 힘이자 매력이다.
그렁그렁 찬 눈물과 인중을 타고흐는 콧물, 새빨간 볼 등 온 몸으로 귀여움을 내뿜는 미라이짱을 담은 사진집은 누적 12만 권 이상이 판매됐다.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
카와시마의 뮤즈, 볼 빨간 소녀 슬롯 머신 규칙

일본 도쿄 출신의 사진 작가 카와시마 코토리가 오는 26일부터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에서 첫 번째 내한 전시를 연다. 그의 작품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라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의 이름은 낯설더라도 대표작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법하기 때문이다.

새빨간 볼에 방울방울 맺힌 콧물, 불만 가득한 듯 치켜 올라간 눈썹과 아이스크림으로 범벅된 입을 한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바로 그의 대표 작품이다. 연신 얄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어린아이는 ‘슬롯 머신 규칙’으로 통한다. 독보적인 귀여움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까지 강타한 이 소녀는 일본 나카타현 사도가 섬에 사는 카와시마 친구의 딸로, 본명은 츠바키다.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 별관 M2 세 개 층을 사용하는 이번 전시. 미라이짱은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익살스러운 표정과 생기 넘치는 츠바키의 모습에 매료된 카와시마는 일본어로 미래를 뜻하는 ‘미라이(未来, Mirai)’라는 이름에 상대방을 친근하게 부르는 일본어 접미어 ‘짱(ちゃん, chan)’을 붙인 애칭을 지어주고 슬롯 머신 규칙을 뮤즈로 한 작품 활동을 계획한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슬롯 머신 규칙의 집에서 짧게는 3일, 길게는 열흘 정도 머물며 시골 소녀의 순수함을 담아낸 작가는 2011년 사진집 <슬롯 머신 규칙(未来ちゃん)을 발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꾸밈 없이 일상 속 순진무구한 슬롯 머신 규칙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은 누적 12만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한국에서도 수년간 일본도서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하는 등 이례적인 사랑을 받았다. 출간 12년이 지난 지금, 사진집은 절판됐지만 여전히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프리미엄 가격으로 거래될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2006년 신풍사 히라마 이타루 사진상 대상을 수상한 그의 첫 사진집 &lt;BABY BABY&gt; 연작.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
그의 렌즈 통해 바라본 다양한 인물이번 전시는 그가 대학 시절 친구를 촬영해 처음으로 사진집으로 발간한 연작 <BABY BABY부터 그의 대표작 <미라이짱, 슬롯 머신 규칙의 모습을 포착한 신작 <사랑랑까지 총 309점의 작품을 통해 그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한다.

각 작업에서 묻어나는 카와시마 특유의 자연광을 활용한 따뜻하고 감성적인 분위기와 그의 렌즈를 통해 포착된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는 것 또한 이번 전시의 포인트 중 하나다.
일본 배우 나가노 타이가의 색다른 매력을 포착한 〈(세계)² 〉.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
일본의 연기파 배우 나카노 타이가(Nagano Taiga)를 비롯해 영화배우이자 카와시마의 오랜 친구인 우스다 아사미(Usuda Asami), 영화 <똥파리를 통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감독 겸 배우 양익준, 모델 정다원과 김규리 등이 그의 작품 속 피사체로 등장한다.2016년 작업한 〈길〉은 국내에도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나카노 타이가를 일 년동안 사진으로 기록한 연작으로, 도쿄, 오키나와, 대만 등을 함께 여행하며 그의 일상을 포착했다. 맨 얼굴에 편안한 의상을 입힌 채 촬영해 유명 배우가 지닌 화려함보다는 그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깊은 개성을 담아냈다.
2014년 대만에서 촬영한 작업 &lt;명성&gt;. 3년간 서른 번에 거쳐 대만을 방문하고 7만 장이 넘는 사진을 남겼다.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 제공
양익준은 "카와시마가 기록한 사진에는 온전한 사랑이 머물러 있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카와시마 작품 속 인물들은 따스하고 몽글몽글한 감정을 머금고 있다. 특히 2019년 나카토 타이가, 대만 여배우 야오 아이닝(Yao Aining)과 함께한 작업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에서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영향인지, 마치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따듯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평소 양익준의 팬이었던 카와시마는 그의 작업을 존경해왔다. 직접 그가 일하는 가게를 찾아가 인사를 건네며 친분을 쌓았고, 이번 전시에서 양익준이 등장하는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작가가 만난 슬롯 머신 규칙의 ‘사람’과 ‘사랑’
카와시마 특유의 감성적인 시선으로 재해석된 슬롯 머신 규칙의 풍경. /강은영 기자
그의 따뜻한 시선이 슬롯 머신 규칙에도 내려앉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신작 <사랑랑은 2023년 9월부터 2024년 3월까지 7개월간 슬롯 머신 규칙 을지로 일대를 촬영한 작업으로, 한국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개인의 성장통이 녹아 있다.

사랑랑은 작가가 좋아하는 두 슬롯 머신 규칙어 단어 ‘사람’과 ‘사랑’을 합쳐 만든 그만의 언어다. 그는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과 발걸음을 붙잡는 구름,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을지로의 오래된 간판, 흐트러지는 별빛의 모습을 닮은 노을 진 한강, 처음 만났지만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들을 수 만장 찍고 ‘사랑랑’이라 이름 붙였다.
벽의 틈새를 통해 색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작가 카와시마 코토리. /슬롯 머신 규칙미술관
일과 일상에 지쳐 있던 시기 한국을 방문한 그는 슬롯 머신 규칙이 지닌 빠르고 열정적인 에너지에 신선함을 느꼈다. 평소 후지필름 pro400 필름 카메라를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최첨단 기술과 오래된 전통이 공존하는 슬롯 머신 규칙로부터 받은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고해상 디지털 카메라와 컴팩트 필름 카메라 등 총 7대의 카메라를 사용했다. 전시장 내부도 을지로 골목을 본따 탐험하듯 작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아울러, 20여 년간 사진에 매진해 온 작가가 최초로 시도한 영상 작업물이 공개된다, 작가가 촬영한 슬롯 머신 규칙의 풍경이 싱어송라이터 우효의 노래 ‘돌아온 울고있을레게’와 어우러져 상영된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