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바카라은 왜?” 톨스토이의 영원한 물음

[arte] 서정의 머나먼 나라의 책 읽기

레프 가상 바카라
개체의 소멸 그리며 가상 바카라의 공포와 맞서다
톨스토이는 <고백록(1882)을 집필하기 바로 전 시인 페트에게 쓴 편지에서 “엄청난 더위와 목욕, 그리고 과일이 나를 지적으로 안일한 상태로 이끌었다. 나는 두 달 동안 손에 전혀 잉크를 묻히지 않았고, 사상으로 머리를 더럽히지 않았다. 올해처럼 이 세상을 멋지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잠시 멈춰 서서 그저 감탄하며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무언가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고 했다. 작가에게는 생명 가득한 세계에 대한 환희와 도취가 있었다. 자연 일부로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다가 가상 바카라을 맞고 무덤에 묻히며 그 위에는 풀이 자라나는 현상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웅장하고 적극적인 생의 긍정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 서사시적 세계는 개체의 가상 바카라 앞에서 공포에 직면하며, 선악의 피안에서 떠내려와 죄의식으로 고통받기 시작한다.
니콜라이 게, 가상 바카라 초상(1884)
말의 일생1886년 발표된 <홀스토메르의 부제는 “어느 말의 이야기”이다. 늙고 병든 거세마 홀스토메르를 한 무리의 말들이 업신여기며 폭력을 가한다. 그러다 그 거세마의 이력을 아는 암말 뱌자푸리하가 그가 누구인지를 대략 설명하자 무리는 비로소 홀스토메르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홀스토메르(보폭이 크다는 뜻을 지닌 이름)는 말들에게 가상 바카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순종 종마였지만 품종 결함인(혹은 그렇게 여겨지는) 흰 반점이 있었고 이 때문에 매우 빠르지만 2급 말로 취급됐다. 어느 날 그가 어느 암말과 사랑에 빠지자 주인인 백작은 홀스토메르를 거세해 버렸다. 홀스토메르는 마구간 관리인에게 주어졌고, 나중에 그 관리인은 자기 말이 백작의 말보다 빠르다는 사실에 겁을 먹고 홀스토메르를 사기꾼에게 팔아버린다. 그 후 그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뀐다. 무엇보다도 홀스토메르는 애정으로 섬겼던 세르푸홉스코이 공작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 공작은 변심한 애인을 무리하게 좇다가 홀스토메르를 불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는 거듭 팔려 다니는 신세가 된다.

홀스토메르는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며 그 빛나던 시절을 떠올린다. 생명력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들에 가치를 부여할 수는 있어도 다음과 같은 인간들의 습성에는 의문을 품는다. “사람들이 나를 특정한 사람의 소유물로 부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아 있는 나를 두고 나의 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땅, 나의 공기, 나의 물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해에 이른다. “관찰과 경험을 통해 세상사를 더 알아가는 동안 우리네 말들을 비롯한 온갖 대상에 적용되는 ‘내 것’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천박하고 저급한 본능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어떤 다른 근거는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본능을 ‘소유 의식’ 혹은 ‘소유권’이라고 부른다.” 당연하게도 이 놀음은 생명체에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해주지 못하고, ‘존재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가상 바카라은 계속된다.
가상 바카라가 1886년에 발표한 거세마의 이야기 &lt;홀스토메르&gt; 러시아판 표지. / 이미지출처. mnogobookaf 홈페이지
인간의 일생나중에 세르푸홉스코이 공작은 재산을 탕진한 후 홀스토메르의 마지막 소유자의 손님으로 나타난다. 이야기는 홀스토메르의 가상 바카라과 세르푸홉스코이의 가상 바카라을 병치하며 끝난다. 톨스토이는 갖은 학대에도 주인을 정직하게 섬기고 도살당한 후에도 그 가죽과 고기가 누군가에게 유용했던 일과 생전에 모든 사람에게 짐만 되었던 세르푸홉스코이의 장례식을 대조한다. “일주일이 지나자 벽돌로 지은 헛간 곁에는 커다란 머리뼈와 넓적다리뼈 두 개만 남았다. 나머지는 차례로 모두 가져가 버렸다. 여름이 되자 뼈를 가져갔던 농부가 넓적다리뼈와 머리뼈까지 사용하려고 그것들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 세상을 주유(周遊)하며, 먹고 마셨던 세르푸홉스코이의 죽은 몸뚱이도 한참 뒤에는 땅에 묻혔다. 그러나 그의 가죽이나 살, 뼈 중 어느 하나도 쓸 데가 없었다. 세르푸홉스코이가 죽기 전 20년 동안 세상을 주유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듯이, 그의 죽은 몸뚱이를 처리하는 일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되었다.”

톨스토이는 “어느 누구에도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었던” 홀스토메르가 “모든 것을 용서했다”고 전한다. 가상 바카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운명에 순종하는 홀스토메르의 모습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톨스토이의 ‘정신적 위기’가 갑자기 도약하는 듯한 조바심이 보이기도 한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숨과 함께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홀스토메르의 삶에 비로소 휴식이 찾아온 듯 모든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낀다는 것, 홀스토메르를 통해 연민과 용서, 생명에 대한 존중, 노동의 가치 등을 보여주며 생명체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바랐던 것, 작가는 인간이 아닌 말(馬)을 통해 이를 그려보고자 했던 것인가.

소멸의 공포<이반 일리치의 가상 바카라(1886)은 주인공의 부고로 시작되고, 그의 동료들은 중견 판사 이반 일리치 골로빈의 사망 소식을 두고 이야기한다.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 등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듯이 그들도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겠어, 죽었는데. 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 있잖아.’ 그들 각자는 이렇게 생각하거나 그런 느낌을 가졌다.”

이반 일리치는 평범한 가상 바카라이다. 그는 재능있고 부지런하다. 그는 술주정뱅이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다. “능력 있고, 밝고 선량하며 사교적이면서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해내는 그런 성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자신의 의무라고 여기는 일은 높은 가상 바카라들이 그렇다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나 커서나 아첨과는 거리가 먼 가상 바카라이었지만,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날벌레처럼 어려서부터 사교계의 최고위층 가상 바카라들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려 그들의 습관이며 세상을 보는 시각을 그대로 따라 배우며 그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갔다.”

주인공의 “즐겁고 품위 있는 삶”의 절정은 “매력적인 집”을 구매하고 꾸미는 것이었다. 일꾼에게 커튼을 거는 방법을 보여주려던 이반 일리치는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이 낙상으로 그의 병증은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옆구리의 둔한 통증이었지만 점점 심각한 병으로 발전한다. 병들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을 때 이반 일리치의 주된 관심사는 의사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는 것, 통증과 모든 신체 기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주된 고통이 된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삶도 가상 바카라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기만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톨스토이 &lt;이반 일리치의 가상 바카라&gt;(1886년) 러시아판 표지. / 이미지출처. ozon홈페이지
그런데 톨스토이의 진면목은 삶의 허위를 드러내는 데 있다기보다 개체의 가상 바카라의 과정을 그리는 데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아마 작가 자신도, 자신의 부재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없다는 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인가? 내가 없어지면 그럼 난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중략) 이를테면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을 보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바로 이런 명백한 사실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되지 자신에게는 도무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없는 무력감과 끔찍한 고독이, 사람들과 신의 냉혹함이, 그리고 신의 부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탄식한다.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고통과 가상 바카라…… 도대체 왜?”

처음에 그는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결국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찾아들었지만, 그는 즉시 자신의 삶은 올바르고 정당했다고 강변하며 그 이상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내 버렸다.” 그러다 이반 일리치에게 자기 삶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높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싸우고 싶었던 마음속의 어렴풋한 유혹들, 생각이 나자마자 신속하게 털어버렸던 그런 은밀한 유혹들, 어쩌면 바로 그런 것들이 진짜고 나머지 모든 것은 다 거짓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일과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와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도 다 거짓인지 모른다.”는 진실에 마주했을 때도 자신의 가상 바카라이 해명되지는 않는다. 그 진실은 분명 더 진전된 진실이되 가상 바카라의 비밀을 풀기에는 미달하는 것이다.

무한한 정직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낱낱이 설명하는 당시의 톨스토이는 58세였다. 톨스토이는 정신적 위기로 물음표의 연속인 상태에서도 사람들과의 연합에 삶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남들의 기준에 따라 그럴듯한 품위를 유지하며 잘 사는 척하거나 행복만을 원한다.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여서 “건강하고 아름답고, 분명 사랑에 빠진 딸은 행복을 방해하는 질병과 고통, 가상 바카라 같은 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는데, 예외적인 인물은 병든 주인을 불쌍히 여기는 하인 게라심과 아버지의 고통에 울부짖는 그의 십대 아들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가상 바카라 앞에서 드러나는 진실이 화해와 용서와 구원을 가져온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가상 바카라은 가상 바카라으로써 끝난다고 톨스토이는 관찰한다. 그는 끝내 가상 바카라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삶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는 가상 바카라으로써 가상 바카라의 공포는 끝이 난다는 것이었다.1880년대 ‘정신적 위기’ 이후 톨스토이의 전향은 자연에서 도덕으로의 이행이라고 평가되곤 한다. 그에게 생의 환희가 거대했던 만큼 가상 바카라의 공포는 극심했다. 완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열망은 인생 마지막 시간까지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그는 집을 떠나 객사한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처절하게 정직했던 한 인간이 떠오르고, 인간에게 ‘크기’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하일 네스테로프, 가상 바카라 초상(1907). / 이미지출처. wikioo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