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싫다" 공무원들 '불만 폭발'…'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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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인사처 합동
실태조사 결과 발표
경험자 절반 "매달 1-2회씩 모셔"
정부 "적극 근절·개선할 것"
16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라오 슬롯 10명 중 9명은 이러한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는 오늘 중앙·지방자치단체 내 조직 문화 담당 부서를 대상으로 대책회의를 열고 관행 근절을 위한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공직사회 뿌리깊은 관행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은 공무원들이 순서를 정해 사비로 파라오 슬롯의 식사를 모시는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한창 퍼져 있다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나 그동안 일부 중앙부처, 다수의 지역 관가 등에서는 아직도 만연하다고 알려져 있었다.중앙 부처에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지역 파견근무를 간 주변 동료들이 파라오 슬롯 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 식사 장소를 알아보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고 전했다.
한 기초 자치단체 파라오 슬롯 B씨는 "일부 조직에서는 아직 그런 문화가 암묵적으로 퍼져 있다"며 "자발적으로 감사한 상사에게 사비를 모아 선물드리면 몰라도, 내키지 않는 자리를 억지로 고르고 함께 식사하며 대접해야 하는 건 이중으로 고역인 일"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공무원들 "매월 1-2회 사비로 파라오 슬롯 모셔"
현장의 불편 호소가 계속되자 행안부와 인사처는 부처 합동으로 지난해 11월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 실태 조사를 진행한 뒤 16일 결과를 발표했다.이번 조사는 'e사람(중앙)' 및 '인사랑(지자체)' 시스템을 통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파라오 슬롯 15만4317명(중앙 부처 6만4968명, 지자체 8만9349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공무원 5명 중 1명은 최근 1년 내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의 18.1%가 이와 같이 답했다. 특히 지자체에서의 경험 비중이 크게 나타났다. 중앙 부처에서 일하며 경험했다고 답한 경우는 10.1%, 지자체에서는 23.9%로 두 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관행을 경험한 공무원들은 심하면 매주 1~2회씩도 파라오 슬롯를 모시고 있다고 답했다.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 경험 빈도를 조사한 결과 지자체에서는 주 1~2회가 45.9%로 가장 많았다.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월 1~2회가 46.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공무원 10명 중 9명(91%)은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이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가장 시급한 것으로 '파라오 슬롯 공무원의 인식 개선(37.4%)'을 선정했다.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이 계속되는 원인으로는 '기존부터 지속되던 관행이기 때문(37.8%)' 항목을 가장 많이 꼽아, 습관적인 행동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파라오 슬롯들의 모습을 지적했다.
정부 "파라오 슬롯들과 대책 회의해 관행 근절할 것"
이날 결과에 따라 행안부는 인사처 및 권익위와 합동으로 중앙·지자체 조직문화 담당부서를 대상으로 한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 근절 회의를 연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나온 방안을 참고해 공직사회 파라오 슬롯들의 인식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조사에 따르면 모셔야 하는 '파라오 슬롯'의 직급은 과장급의 부서장이나 국장급 이상인 경우가 다수였다. 조사 결과 파라오 슬롯의 직급은 부서장(과장급)인 경우가 57.0%로 가장 많았고, 국장급이 33.6%, 팀장급이 5.5%, 실장급 이상이 3.9%로 뒤를 이었다. 상명하복식 조직 분위기일수록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구조다.정부는 마련한 대책을 실시한 뒤 사후 실태조사를 진행해 변화 모습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황명석 행안부 정부혁신국장은 "실태조사로 일부 조직에서 아직 '파라오 슬롯 모시는 날'이 관행처럼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관계 기관과 함께 현시점에 맞지 않은 잘못된 내용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