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고통 속에 살던 프리다 바카라 사이트, 영원불멸의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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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김경수의 길 위의 미술관1951년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천경자가 그린 그림입니다. 젊은 여자가 뱀을,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무더기로 몰려있는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려 발표합니다. 바카라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징그러운가요? 무섭진 않으세요? 수많은 뱀이 엉켜 있습니다. 가운데를 잘 살펴보면 고개를 꼿꼿이 든 채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를, 아니 세상을 똑똑히 마주하는 뱀이 있습니다. 바카라 그 뱀이 자신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슬픔이나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느껴지나요?
바카라 편 ①부산 국제구락부와 고흥 앞바다
바카라 그림을 팔아 모은 돈 30만 환으로 방 두 칸짜리 흉가 같은 집을 겨우 장만합니다. 20대에 전시회를 성공시킨 여성 화가가 어렵사리 집을 장만한 사연은 무엇일까요? 동양화 <생태의 강렬한 색감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걸까요? 왜 꽃다운 20대가 뱀을 그렸을까요?
궁금증을 풀어보려 1924년 11월 11일 천경자가 태어나고 자란 전라남도 고흥읍 서문리로 가봐야겠습니다. 정확히 100년 전입니다. 바카라 1924년 11월 11일 푸른 바닷가 고흥의 소록도가 내려다보이는 봉황산 밑 서문리에서 태어납니다.
고흥의 푸른 바다와 산, 할아버지가 가꾼 멋진 정원의 갖가지 꽃들, 달리아, 연둣빛 밥티꽃(수국), 엄마의 조각 비단 바구니 등이 바카라 그림의 채색의 기원이 됩니다. 어린 날 처음으로 바다의 빛을 보고 무서우면서도, 짙은 코발트 그린의 신비스러운 색감에 빠져들었던 기억, 봉황산 푸른 소나무 빛. 곱고 건강한 그 빛들을 표현해 보고자 채색 화가가 되어 화려한 꽃뱀 무더기를 그린 채색화가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필 왜 뱀이었을까요? 고흥보통학교(현 고흥초등학교) 시절, 나물 캐러 갔다가 꽃뱀이 비단띠인 줄 알고 집으려다 뱀에게 물려 죽는 친구를 보게 됩니다. 친구가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얼마 후에는 커다란 능구렁이가 집 대문 밖바카라 똬리를 틀고 있는 걸 보기도 합니다. 동네 남자들이 뱀을 몰아쳐 죽이는 장면도 목격합니다. 그렇게 유년 시절에 뱀에 대한 강렬한 기억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뱀 이야기는 잠깐 접고, 바카라가 화가가 된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명문 여고를 다녀 집안의 자랑이었으나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성적이 뚝뚝 떨어져 아버지한테 혼이 나기도 했고, 사춘기 시절에는 기숙사에서 탈출해 긴 댕기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와 퇴학당할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아도 친구와 함께 읍내로 놀러 가는 배짱 좋고 낙천적인 소녀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미술 수업에서 특히 두각을 보였습니다. 김임년 미술 선생이 도쿄에 있는 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추천했으나, 1941년 학교 분위기는 여자를 일본에 유학 보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담임인 군국주의자 오쿠다 선생은 뺨을 여러 차례 때리며 못마땅해합니다. 천경자 집안의 재력도 일본 유학을 보낼 만큼은 아니었기에 아버지가 반대하지요. 그러자 바카라 다듬잇돌 위에 앉아 울부짖다가 큰소리로 깔깔 웃기를 반복하며 실성한 듯한 연기를 합니다. 이에 어머니가 “어매, 이 집 난리났네에..., 이러다 다 큰 자식 죽이겄네에...”하며 딸 편을 듭니다. 아버지는 다 키운 딸을 망치나 싶어 할 수 없이 유학을 보냅니다.
이렇게 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 고등과로 입학했습니다. 입체파, 야수파 등이 유행하던 시절이지만 바카라 곱고 섬세한 것, 아름다운 색을 마음껏 표출하고 싶어 일본화를 선택합니다. 선배 박래현을 만나 조선미술전람회를 알게 되고, 1942년 <조부, 1943년 <노부로 연이어 입선하여 아버지에게 면목이 서게 되었습니다. 조선인 수상자 비율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던 조선미전 입선은 대단히 자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카라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멋지게 등단합니다.
집안도 망하고, 결혼까지도 창피하게 되어 버리니 고향을 떠나 광주로 셋방살이를 옵니다. 가장이 되어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 교사로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바카라 짬짬이 그림에 몰두하여 전남여고 강당에서 첫 전시회를 엽니다. 화가였으니까요, 화가인 정체성을 잊으면 죽을 것 같았을 테니까요.
1950년 6·25가 터집니다. 도움도 안 되면서 애를 뺏어가려고 위협하던 남편은 전쟁 중 행방불명이 되고, 여동생 옥희는 폐병에 걸립니다. 눈앞바카라 사랑하는 동생이 죽어가는 것을 봐야 했습니다. 약을 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돈을 구하기가 어려워 눈물로 나날을 보냅니다. 의사 공부를 안 하고 쓸데없이 그림을 그린 자신의 죄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치면서요.
이때 그린 그림이 뱀 그림입니다. 하루라도 사는 길은 바카라 그리는 것일 뿐, 광주역 앞 납작한 한옥 뱀 집에 유리 상자를 놓고 그 안에 독뱀들을 넣어 그리기 시작합니다. 옥희의 병은 심해지고 가난으로 약을 구할 수는 없고….
“누이동생도 죽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의학을 공부 못해 오만가지 저주를 받은 것이고, 두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낸 나는 악이 받쳤던가, 꽃향기 찾아 스치는 뱀 두 마리로는 마음이 차지 않아 수십 마리의 무더기 뱀을 그림으로써 살 용기와 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바카라,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랜덤하우스 중앙, 2006)
한가운데 꼿꼿이 머리를 치켜든 뱀을 중심으로 무더기 뱀을 그려 넣은 여자, 어지럽게 뭉쳐 있는 뱀의 머리 위에 성냥개비를 올리며 세어 보니, 서른세 마리. 윗부분에 다시 두 마리의 뱀을 더 그립니다. 누군가가 서른다섯 뱀띠였거든요. 그 '누군가'에 대해서는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이렇게 죽기 살기로, 아니 살기 위한 안간힘으로 25일 만에 약 25호 크기로 탄생한 작품이 위바카라 보여드린 <생태입니다. 화려한 초록 물이 투두둑 슬픔으로 떨어져 신비로운 뱀 무더기들로 태어납니다. 섬뜩하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한 아름다움으로 삶을, 생을 표현합니다.
김경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