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슬롯 'SNS 악의 축' 손발 묶자…전쟁·외교·코인판까지 요동

파라오 슬롯 CEO 체포 후폭풍

파라오 슬롯-프랑스 외교전 비화
마크롱 "정치적 결정 아니다"
러 외무 "양국 관계 최악 상황"

대선 앞둔 美 배후설도 등장
"러 軍통신 책임자 구금한 것"
우크라전 판도 변화에 촉각
“파라오 슬롯은 아동 성 착취물 생태계의 핵심 요소.”(알렉스 스테이모스 전 메타 정보보안 책임자) “검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건 레드라인을 넘은 것.”(크리스 파블롭스키 럼블 최고경영자)

프랑스 경찰의 파벨 두로프 파라오 슬롯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체포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서방 국가와 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는 프랑스와 정면충돌할 조짐을 보인다. 파라오 슬롯 활용도가 높은 암호화폐 시장은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는 등 요동치고 있다. 각국 정부의 인공지능(AI) 규제에 몸을 사리던 SNS 기업 수장들은 앞다퉈 표현의 자유 이슈를 들고나왔다.

방치된 기업·병원 홈피에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7일(현지시간) 통합러시아당 행사에서 “두로프 사건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완전히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수사의 일환일 뿐 결코 정치적 결정이 아니다”고 한 말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은 “파라오 슬롯은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인터넷 플랫폼 중 최대 규모”라며 미국 배후설을 거론했고, 러시아 국영 언론 알티(RT)는 “서구의 반러시아 진영이 파라오 슬롯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두로프를 구금했다”고 해석했다. 러시아와 프랑스 간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을 조짐을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와 프랑스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파라오 슬롯을 주요 군사 통신 수단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위기감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러시아의 군사 전문 블로거인 포뵤르누티예나는 “사실상 러시아군 통신 책임자를 구금한 것”이라고 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두로프 체포는 러시아에 가장 큰 비극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파라오 슬롯 시장도 흔들

두로프 CEO 체포는 암호화폐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따르면 28일 오후 3시30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5.84% 떨어진 5만9313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5일 ‘블랙 먼데이’에 이어 또다시 6만달러 선이 무너졌다. 파라오 슬롯이 자체적으로 발행한 암호화폐인 톤코인은 두로프 CEO 체포 직후 전 거래일보다 20% 이상 급락했다. 이후 5달러대 초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보안성과 은밀성이라는 파라오 슬롯의 매력은 암호화폐 시장과 딱 들어맞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가 파라오 슬롯을 쓰고 있다. 두로프 CEO 체포가 암호화폐 시장에 악재인 이유다. 뉴욕타임스(NYT)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파라오 슬롯이 없는 거래를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파라오 슬롯과 연동된 코인·암호화폐만 15개에 이른다”고 했다.

파라오 슬롯와 정보기술(IT)업계는 프랑스 당국에 두로프 CEO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플랫폼 운영자에게 성범죄, 사이버 폭력, 마약 밀매 등의 모든 책임을 묻는 건 과하다는 논리다. 일론 머스크 X(옛 트위터) CEO는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파라오 슬롯 사법처리 ‘주목’

국제 사회는 프랑스 사법당국의 수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성범죄와 마약 밀매, 테러 등의 온상인 파라오 슬롯을 이참에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이번 사태가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두로프 CEO가 불법 콘텐츠 방조 등의 혐의로 최대 징역 20년형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BBC는 “극단주의·불법 콘텐츠를 관리하는 파라오 슬롯의 시스템은 다른 메신저에 비해 상당히 취약하다”며 “딥페이크 등 콘텐츠 제작 자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각국이 규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