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증권은 90% 돌려줬는데 KB는 왜"…슬롯 꽁 머니들 '발동동'
입력
수정
美 마가리타빌 호텔 관련 펀드 슬롯 꽁 머니들 '전액 손실'국내 금융사들이 메자닌(중순위) 대출에 참여한 미국 뉴욕 맨해튼 소재 호텔이 헐값에 넘어가면서 관련 펀드에 투자했다 원금 손실을 입은 국내 슬롯 꽁 머니들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소송전에 나선 슬롯 꽁 머니들은 같은 투자대상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펀드에 투자했음에도 가입한 금융사에 따라 배상받는 비율이 달라진다는 점에 항의하고 나섰다.
하나증권·은행 사적화해…슬롯 꽁 머니금 90% 배상
30% 배상키로 한 KB…슬롯 꽁 머니 "형평성 어긋나"
KB슬롯 꽁 머니 "배상비율 확대 검토"
30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2019년 KB증권 자산관리(WM)조직에서 가입한 펀드를 통해 미 뉴욕 맨해튼 소재 고급호텔 '마가리타빌 리조트 타임스퀘어'에 투자한 개인·법인 슬롯 꽁 머니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송을 위해 모인 개인·법인 슬롯 꽁 머니는 총 15곳으로 이들 투자 원금은 약 114억원이다.소송에 앞서 슬롯 꽁 머니들은 이달 초 법무법인을 통해 KB증권 측에 사적 화해를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사적 화해는 금융 분쟁이 발생할 경우 금융사와 슬롯 꽁 머니 간 소송으로 가지 않고 상호 합의를 통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조치다.
마가리타빌 리조트 타임스퀘어에 투자한 펀드 관련 국내 슬롯 꽁 머니 원금은 전액 손실이 난 상태다. 이 곳은 연면적 1만5793㎡ 규모의 32층 호텔이다. 미 부동산 개발사인 소호 프로퍼티가 약 4억4000만달러(약 6090억원)를 들여 고급 호텔로 지었지만,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꺾였다. 이후 2021년 9월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지면서 경매에 넘겨졌고, 호텔은 당초 투자 금액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억5000만달러(약 2070억원)에 매각됐다. 변제 순서가 중순위 대출보다 앞선 선순위 채권단조차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해당 호텔 중순위 채권에 투자한 국내 슬롯 꽁 머니들로선 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앞서 2019년 하나증권·은행은 마가리타빌 리조트의 중순위 대출에 약 970억원을 투자한 뒤 그해 글로벌원자산운용을 통해 펀드를 설정했다. 이후 KB증권과 손해보험사 등 기관 4곳에 재매각(셀다운)했다. 당초 KB증권에 셀다운 된 금액은 369억원으로 파악됐다.슬롯 꽁 머니들이 판매사 책임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하나증권·은행은 사적 화해를 통해 손실액 대부분을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하나증권·은행은 올 상반기 슬롯 꽁 머니들과의 사적화해를 결정하고 투자원금의 90%를 돌려줬다. 2019년의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관련해서도 당국이 손실액의 최대 80% 배상을 인정한 점을 감안하면, 90% 배상 결정은 이례적 수치다.
하나증권이 높은 배상비율의 사적 화해를 단행하면서 일각에선 실제 불건전 영업행위 소지가 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나증권은 이에 대해 "슬롯 꽁 머니 보호를 위해 선제적 조치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슬롯 꽁 머니가 입은 손실의 전부나 일부를 금융사가 사후에 보전해 주는 것을 막고 있다. 다만 위법행위 여부가 모호한 때는 예외다. 회사가 사적 화해 일환으로 손실을 배상할 수 있도록 했다.하나증권의 대응이 알려지자 KB증권에서 관련 펀드에 가입한 슬롯 꽁 머니들 반발이 거셌다. 손실이 가시화된 지난해 4월 이미 KB증권은 개인·법인 슬롯 꽁 머니들로부터 미상환 원금의 30%를 선지급하는 대신 민원 등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가지급금 동의서를 받아냈다. 같은 투자대상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펀드에 투자했음에도 판매사별로 배상비율이 천차만별일 수 있냐는 불만이 커진 것이다.
슬롯 꽁 머니들이 KB증권 측에 원하는 것은 배상 비율 재조정이다. "사실상 상품구조가 동일하므로 하나증권·은행이 단행한 90% 비율을 고려해 기존 30%에서 배상비율을 확대해줘야 한다"는 게 이들 입장이다.KB증권 측은 최근 금융감독원과 면담을 갖고 배상비율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송을 준비 중인 슬롯 꽁 머니들로부터 민원이 집중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금감원은 지난달 초 KB증권을 불러 하나증권과 은행의 사례를 들면서 배상비율 재조정 의향 등을 물었다. KB증권 관계자는 "하나증권의 90%는 드문 배상비율이어서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다만 슬롯 꽁 머니 보호 등 차원에서 배상 비율을 기존 30%에서 확대하는 등 사적 화해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와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의 해외 부동산 슬롯 꽁 머니는 '대체 슬롯 꽁 머니'라는 명목으로 2016년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대체슬롯 꽁 머니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57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북미 지역이 34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 호황으로 자산 가격이 이미 크게 오른 시점에 슬롯 꽁 머니한 금융사는 줄줄이 손실을 봤다. 금융사가 슬롯 꽁 머니한 단일 사업장(부동산) 35조1000억원 중 2조4100억원(6.85%) 규모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도 집계됐다. 기한이익상실은 이자·원금 미지급 등 사유로 인해 채권자가 대출을 만기 전에 회수할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
최근 금감원은 해외부동산 사모펀드 관련해 민원이 계류 중인 회사들을 위주로 사안 파악에 나선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한 상업용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애초 6~7%의 수익률을 목표로 했던 펀드들은 현시점에선 원금 손실 위기에 처한 상태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