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사이트 "죽은 내 아들한테 자식이 있었다고?"…비밀 드러나자 '발칵'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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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점묘법의 창시자
조르주 바카라사이트(1859~1891)
말 없이 찍은 수많은 점들
바카라사이트사라는 하늘에 박힌 별이 되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처음 보는 여자가 아기를 안고 불쑥 찾아와 들려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마저 순간 잊을 정도로,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뭐? 내 아들이 자식이 있었다고? 그럼 이 아기가 내 손주란 말이야? 그런데 왜 그걸 나한테 말도 안 하고….’아들은 과묵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일같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있느냐”고 물어봐도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던 아들. 그런데 사실은 자식까지 있었다니. ‘아무리 말이 없어도 그렇지, 매일 사이좋게 같이 밥을 먹었는데….’ 어머니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은 조르주 바카라사이트(1859~1891). 점묘법의 창시자이자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로서 한국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그는, 사실 자신의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자식의 출산 소식조차 얘기하지 않을 정도로 비밀이 많은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내다미술에 관심이 없더라도 바카라사이트의 이름이나 점묘법이라는 기법을 한 번쯤 들어봤거나 그의 작품 이미지가 눈에 익은 분이 많을 겁니다. 그만큼 바카라사이트와 그가 남긴 작품들이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반 고흐 등 비슷하게 유명한 다른 화가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입니다. 생전 엄청나게 과묵했고 자신에 관한 기록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878년, 바카라사이트는 프랑스의 명문 미술학교인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합니다. 일반적인 천재들과 다르게 그의 성적은 의외로 중간 수준(80명 중 47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 무렵 바카라사이트가 그린 훌륭한 흑백 드로잉들이 그 증거입니다.
학교에서 쌓은 공부를 재료로 삼아 1년간 바닷가에서 군 복무를 하며 생각을 정리한 그는, 스물한 살이 되던 1880년 스튜디오를 차려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4년 뒤인 스물다섯 살 때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바카라사이트을 발표합니다. 파리 교외 강변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그린 ‘아스니에르의 물놀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점묘화의 탄생
바카라사이트의 깨달음은 과학적으로 분석한 ‘색’에 있었습니다. 물감은 섞을수록 짙고 어두워집니다(감산혼합). 좋아하는 예쁜 색깔의 물감을 모두 섞었더니 칙칙한 검은색이 돼서 속상했던,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반면 빛은 섞일수록 흰색에 가까워집니다(가산혼합). 그런데 사람은 빛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빛을 표현하고 싶어도, 화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물감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빛의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는 지금 기사가 띄워져 있는 전자기기 디스플레이의 기본 구성 요소, ‘픽셀’의 원리와도 같은 발상입니다.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니터나 휴대전화 등 디스플레이 장치는 무수히 많은 픽셀로 구성됩니다. 이 픽셀은 다시 빨강, 초록, 파랑의 작은 조각으로 나뉩니다. 이 조각들의 빛 세기를 각각 적절하게 조절하면 색깔이 표현되고, 이 픽셀이 모여서 전체 화면을 만들게 됩니다. 바카라사이트는 이런 원리를 일찌감치 떠올렸습니다. 당시 인간의 시각과 색에 대한 최신 과학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일 리 없었습니다. 바카라사이트는 2년의 세월 동안 오직 그림에만 몰두했습니다. 오전 시간 그랑자트 섬에서 사람들을 스케치한 그는 친한 친구들이 점심을 먹자고 해도 뿌리치고 스튜디오로 돌아가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 뒤 그림 구도를 구상하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조명 아래에서 그리면 색감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그림을 망친다’는 동료 화가들과 달리, 밤에도 어두운 조명 아래서 바카라사이트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자신이 그리는 그림 속 색과 형태를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한 ‘설계도’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기에, 그만큼 그림에만 집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카라사이트는 묵묵히 점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점을 찍는 과정에서도 좋은 소재를 발견하거나 생각이 바뀌면 여러 번 구도를 변경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 작품 속에 있는 점은 총 22만개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카라사이트가 이를 위해 만든 습작까지 합하면, 그가 찍은 점의 총 수는 백만 개가 훨씬 넘을 겁니다.
바카라사이트가 무수히 많은 점을 찍으며 했을 생각을 감히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환희에 젖었을까요. 그보다는 괴롭고 힘든 시간이 더 많았겠지요.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갔고, 마침내 바카라사이트는 작품의 마지막 점을 찍었습니다. 첫 점을 찍었을 때 스물다섯 살이던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이 돼 있었습니다
말 없는 젊은이
그가 1886년 인상주의 전시에 출품한 이 바카라사이트은 예상대로 미술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칭찬보다는 비판이 더 많았습니다. 평범한 평론가들은 그의 바카라사이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경직돼 있다.” “그림을 덮고 있는 색색의 벼룩을 벗겨내면 그 밑에는 생각도 영혼도 없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더욱 격렬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르누아르는 말했습니다. “바카라사이트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야. 아무리 과학을 들이대봤자 예술을 따라잡을 수는 없어. 예술에는 공식이 없거든.” 하지만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은 역설적으로 바카라사이트 작품의 중요성을 잘 드러내는 반응이기도 했습니다. 거장들의 본능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바카라사이트의 작품이 ‘기존 인상주의에 대한 도전장’이자, 미술 역사에 남을 만한 잠재력이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는 사실을요.
반면 새로운 세대의 화가들은 바카라사이트의 화풍에 열광했습니다. 반 고흐는 1888년 바카라사이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고, 실제로 자기 작품에 점묘법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펠릭스 페네옹을 비롯한 일부 평론가들도 바카라사이트의 작품을 이해하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거대한 그림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대담하고 새롭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미술계에 난리가 났는데도, 여전히 바카라사이트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을 바라보고, 감각을 느끼고, 그걸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고통은 충분하다.” 바카라사이트가 말을 많이 할 때는 오직 자신의 작품과 그 속에 숨겨진 이론을 설명할 때뿐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작품을 설명할 때 바카라사이트의 눈은 빛났습니다. 느리고 차분한 말투, 신중한 제스처로 바카라사이트는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바카라사이트는 매우 겸손하고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카라사이트의 작품 설명을 듣다 보면, 그가 말을 하지는 않아도 자기 작품과 성취에 대해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카라사이트의 생각대로 이 작품은 미술사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젊은 날을 작품에 몰두해 보냈고 큰 성취를 거뒀으니 잠시 휴식을 취할 법도 한데, 그는 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조바심을 냈다”(폴 시냑)는 게 친구들과 동료들의 기록입니다. 점묘법이라는 자신의 혁신적인 생각과 기법이 이제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잡기도 쉬워졌다는 두려움이 생겨서였습니다. “기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개성이 중요하고, 바카라사이트의 개성은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것”(카미유 피사로)이라고 타일러도 바카라사이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결코 마음을 열지 않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던 그가, 이 무렵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 건 기댈 곳이 필요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들렌 노블로흐(1868~1903). 바카라사이트는 생전 부모님과 친구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890년 아들을 낳은 후에도 그랬습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아들을 낳고 자리를 잡으면 발표하려고 했던 걸까요, 영원히 숨기려고 했던 걸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카라사이트가 그린 연인의 그림을 보면,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비록 예쁘게 미화해 그리진 않았지만, 부드러운 색채가 마치 봄바람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리고 바카라사이트의 작품은 또 한 번 크게 변합니다. 서른두 살이던 1891년 전시에 출품한 ‘서커스’는 대각선과 원, 곡선 등 여러 구도가 어우러진 그림입니다. 그의 그림에 없었던 단 하나, ‘역동성’이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막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그 순간 바카라사이트의 날개는 안타깝게도 꺾이고 맙니다. 그가 전시 시작 직후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걸렸고, 고열로 쓰러져 불과 3일 만에 허망하게 세상을 등진 겁니다. 그의 나이 서른둘이었습니다. 갓 돌을 넘긴 바카라사이트의 아들도 불과 보름 뒤 같은 병으로 아빠를 따라갔습니다. 바카라사이트의 연인이었던 마들렌 노블로흐는 별다른 말도, 기록도 남기지 않고 10여년 후 세상을 떴습니다. 바카라사이트처럼 말이 없었던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바카라사이트에 관한 이야기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바카라사이트가 남긴 이야기와 작품은 세상에 별로 남지 않게 돼버렸습니다. 활동 기간은 불과 10년 정도에 불과하고, 완성한 작품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색이 바랬습니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의 첫 전시 때 작품을 봤던 평론가들은 10년 후 작품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유지됐지만 녹색은 올리브색으로 변했고 빛을 발하던 주황색은 이제 구멍만 남았다.”(펠릭스 페네옹) 당시 기술의 한계로 불안정한 물감을 썼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색 중 상당 부분이 변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기록도 없고 색도 변했는데 바카라사이트의 작품을 칭송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는 1929년 미술관이 문을 열 때 딱 네 명의 화가를 콕 집어 ‘그들에게 이 미술관을 헌정한다’고 했습니다. 세잔, 고갱, 고흐, 그리고 바카라사이트였습니다. 지금도 미술사에서 바카라사이트의 자리는 굳건합니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대중적인 인기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대중문화에서 수없이 패러디됐고, 시카고미술관을 비롯한 각국 미술관에 있는 그의 작품 앞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로 연일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바카라사이트를 좋아하는 이유를 추측하는 건, 그래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 각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바카라사이트의 인기는 앞서 말한 이 모든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뭔가를 사랑할 때 그렇듯이.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모든 감정과 사소한 사랑의 원천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처럼. 가까이서 하나하나 보면 무의미해 보이고 좀처럼 인식할 수 없는 바카라사이트의 점들이 모여 아름답고 거대한 작품을 만들듯이,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셀 수 없이 많은 점만큼이나 많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바카라사이트가 캔버스를 통해 보여주는 빛이자, 미술의 매력이 아닐까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이번 기사는 Seurat: A Biography(John Rewald 지음), Seurat and La Grande Jatte(Robert L. Herbert 지음), Seurat (Pierre Courthion 지음), Seurat(John Russell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이 2022년 7월 연재를 시작한 후 2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힘껏 쓰겠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바카라사이트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6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바카라사이트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