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P 숨은 표 있을까…'슬롯 머신 보수'에 쏠리는 눈 [총선 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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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하루 앞둔 9일 국민의힘은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보수 지지층을 뜻하는 이른바 ‘슬롯 머신 보수’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거대 양당이 접전지로 꼽는 지역구는 50~60곳. 2~3%포인트 안팎의 '슬롯 머신표'가 최종 선거 결과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200석을 가져가면 나라가 망한다"며 '슬롯 머신 보수'를 투표장에 끌어내려 애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슬롯 머신 보수만 있는 게 아니라 슬롯 머신 민주도 있다"고 맞서고 있다.

과거 선거에서도 여야는 '슬롯 머신 유권자'에 막판 기대를 걸었다. 주로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쪽이 '슬롯 머신론'을 주장했다. 2020년 총선 때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최대 10%포인트에 달하는 슬롯 머신 보수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2021년 재보궐 선거 때는 반대로 민주당이 '슬롯 머신 민주'를 외쳤지만 여론조사 사각지대의 표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5~10%P 숨은 표 있다더니…결과는

사진=연합뉴스/슬롯 머신DB
2020년 21대 총선 때 주요 여론조사에서 밀렸던 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등 여론조사에 드러나지 않았던 ‘5~10%포인트의 숨은 보수 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 숨은 표의 위력은 거의 없었다. 20대 총선 당시보다도 참담한 지역구 84석에 그쳤다. 일부 보수 지지층 결집은 있었지만 영남 지역에 갇혔다.

막판 변수로 꼽혔던 스윙보수(탄핵 국면에서 통합당을 떠난 뒤 복귀하지 않은 보수층)의 결집도 감지되지 않았다. 당시 통합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수권세력으로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공식선거운동 막바지 터진 통합당의 막말 사태 등도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하는 결정타가 됐다.2021년 재보선 때는 반대로 민주당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슬롯 머신진보'를 주장했다. 진보 성향이지만 전임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비위 사건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투기 의혹에 실망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를 밝히지 않았던 유권자 층이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까지도 여론조사 사각지대에 놓인 표가 상당할 것이라며 역전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 이같은 슬롯 머신진보는 정권 심판을 택했거나 투표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나왔다. 전통적으로 국민의힘의 지지층이 많은 강남 3구(서초 64.0%, 강남 61.1%, 송파 61.0%) 투표율이 60%를 넘어선 반면,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금천구 투표율이 52.2%로 가장 낮고 중랑구와 관악구 투표율(각 53.9%)도 서울 전역 투표율(58.2%)에 크게 못 미쳤다.

대선 때 '슬롯 머신 이재명' 있었나

2022년 대선 때는 여야가 모두 '슬롯 머신 윤석열'과 '슬롯 머신 이재명'의 존재를 기대했다. 특히 민주당 측의 '슬롯 머신 이재명'의 기대가 간절했다. 대선 1~2일 전 비공개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4~11%포인트까지 앞서는 결과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로 윤 후보가 상승세를 탔다는 분석이 많았다.결과는 역시 윤 후보의 승리였다. 하지만 결과가 박빙이라 '슬롯 머신 이재명'이 일부 존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 사전투표에선 이재명 후보가 8~9%포인트 가량 윤 후보를 앞섰다. 윤 후보와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하는 등 ‘이대남’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 오히려 ‘이대녀’의 반발을 불렀다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 여론조사 기법이 고도화하면서 최근에는 조사 수치가 실제 표심과 맞아떨어지는 등 간극이 크게 메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7년 안심번호(휴대전화 가상번호) 도입으로 여론조사 표본의 대표성이 증가하면서 조사 정확도가 대폭 개선됐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슬롯 머신보수나 슬롯 머신민주가 있긴 하지만 1~2%포인트 안팎 수준일 것"이라며 "다만 이번 총선은 격전지가 워낙 많아 1~2%포인트가 결과를 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