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사이트, 희보춘신(喜報春信)-필히 ‘봄’이 올 것을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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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매년 섣달이 오면, 준비해 두었던 새 달력을 펴고 꽃 필 시기를 센다. 음력 12월, 아직은 춥고 잔설이 분분한데 어디 꽃이 피었겠나. 봄이 오기도 전부터 설레발치는 이른 마음을 염려하는 이들은 섣부르다 책망할 것이다. 입춘이 왔다 한들, 엄동설한(嚴冬雪寒) 물러설 것 같지 않고, 북풍한설(北風寒雪) 멈출 기미 없을 것 같지만, 극월(極月) 추운 날씨에도 땅(土)은 오래전부터 조금씩 음기를 비우고 양기를 채워 왔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힘은 양기를 얼은 꽃나무 가지 끝까지 밀어 올린다. 결국에는 고운 꽃망울을 띄운다. 그것이 메이저사이트(梅花)다.
메이저사이트는 어떤 다른 식물보다 빨리 초봄을 맞이한다. 꽃부터 피어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메이저사이트는 크게 백메이저사이트와 홍메이저사이트로 나뉜다. 백메이저사이트는 청고(淸高)하다. 발그레 달아오른 분홍빛 뺨에 여린 어깨선을 수줍게 드러낸 어린 소녀가 떠오른다. 그에 비해 붉은 메이저사이트는 화사하고 화려한 자태다. 옛 문인들의 수작을 보면, 여인의 신비로움을 떠올리는 봉접(蜂蝶)의 희롱(戲弄)은 비껴두고 메이저사이트에서 절대 굴하지 않는 기개(氣槪)를, 지조와 덕, 세속 밖의 가인(佳人), 인고 수절하는 의인 등을 더 간절히 보고자 했던 것 같다.
메이저사이트는 같이 동원되는 소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달과 풍설(風雪)이 있는 그림의 이름은 월매도(月梅圖)다. 달과 메이저사이트는 음과 양의 오묘한 조화를 상징한다. 떠오르는 달과 고요함에 둘러쌓은 메이저사이트는 동과 정의 기색(氣色)의 상징이다. 아직 한기 서린 섣달에 핀 납매(臘梅)나 설매(雪梅)는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을 알리는 전령이자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 썩은 듯한 고목에서도 때가 되면 자연은 싹을 피우고 봄의 등불을 킨다는 자연의 이치를 선인들은 문간 대문에 써 붙인 춘련(春聯)의 구절에서, 벽에 걸어둔 납메이저사이트(臘梅畵), 설메이저사이트(雪梅畵)에서 보았다.
작가는 몇 년간 작업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지난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의 관심이 오랫동안 매진했던 민화-책가도(冊架圖,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였던 정물화)에서 설매(雪梅), 납매(臘梅)로 옮겨간 이유다. 부조를 끼운 액자가 아니라 건축물의 창문같다. 액자 너머에는 메이저사이트가 거친 바람에 눈마저 빗겨 내리는데 홀로 혹독함을 견디고 있다.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 여린 꽃송이, 꽃잎이 볼수록 애잔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풍설(風雪) 속 메이저사이트가 아니라, 작가가 자신을 반추한 초상, 삶의 여정 중 유독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의 모습 같다. 인간의 삶, 그 속에서 바라는 것이 과거와 지금이 다를까? 달과 메이저사이트를, 거친 눈과 바람을 견디고 선 메이저사이트를 보며 속을 삭이고 희망을 되뇌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을 수많은 강호(江湖)의 마음을 요즘 공예의 수법과 표현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날은 차고 아직 꽃들도 여물지 않아 시간만 굼뜬 그런 섣달 봄날이다.
1. 어몽룡(魚夢龍), 월매도(月梅圖), 17세기, 비단의 수묵, 119.4×5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 청화백자메이저사이트문와장식사각연적(靑畵白磁梅花文蛙裝飾四角硯滴), 조선,
7.3×9.9×10.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 나전칠국화·모란넝쿨메이저사이트대나무무늬상자(螺鈿漆菊牡丹唐草梅竹文
箱子), 조선 12세기, 9.8×31.3×31.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4. 이지숙, 부귀영화-백매(富貴榮華_白梅), 71×50×5cm,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채색, 2022, 작가소장
5. 이지숙, 찰나-설중매(刹那_雪中梅), 102×110×6cm,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2023, 작가소장
6. 이지숙, 찰나-밤메이저사이트(刹那_夜梅), 27×70×5cm,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2023, 작가소장
7. 이지숙, 찰나-설중매(刹那_雪中梅), 63×120×6cm,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2023, 작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