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서 큰 힘을 얻어요" [책마을]

책마을 사람들 - 백수혜 작가

여기는 '공덕동 슬롯 머신 일러스트유치원' 입니다

백수혜 지음 / 세미콜론
204쪽│1만6000원
‘경축. 공덕동 슬롯 머신 일러스트유치원 졸업식.’

지난 22일 백수혜 작가(36·사진)는 서울 신길동 작업실에 이런 현수막을 내걸었다. 화가이자 전시 기획자인 백 작가는 2021년부터 서울 공덕동 연희동 갈현동 등 재개발 지역에 버려져 있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 화분을 거둬들였다. 시들어가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화분에 옮겨 심고 가꾼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른바 ‘공덕동 슬롯 머신 일러스트유치원’이다. 이날 행사에는 ‘졸업생 슬롯 머신 일러스트’들의 안부를 나누고 새로 졸업시킬 화분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백 작가는 최근 이 같은 활동을 담은 책 <여기는 ‘공덕동 슬롯 머신 일러스트유치원’입니다를 펴냈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유치원이자 백 작가의 집인 공덕동의 한 주택에서 그를 만났다. 아파트 건설 현장을 지나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슬롯 머신 일러스트유치원에 들어서자 토분,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잔, 달걀 껍데기 등에 심어진 슬롯 머신 일러스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10㎡ 남짓한 마당에는 싱그러운 초록 잎이 가득했다. 집 안팎에 놓인 화분만 100여 개. 지금껏 졸업시킨 화분은 300개가 넘는다.

“쓰러진 화분 속에서 햇빛을 받기 위해 ‘ㄱ’자 모양으로 자란 알로카시아가 첫 번째 입학생이었어요. 화분이 늘어나면서 이름을 고민했는데, 고아원은 함부로 쓸 이름이 아니란 생각에 유치원으로 지었어요. 슬롯 머신 일러스트들이 건강하게 자라 졸업했으면 하는 마음도 담았죠. (웃음)”백 작가는 1주일에 한두 번 화분들의 입학을 돕는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이런 수고를 하는 이유는 뭘까. 백 작가의 답은 명쾌했다. “그대로 두면 죽어버릴 테니까요.” 그는 “거의 죽어가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 되살아나는 걸 바라보는 게 제게도 큰 힘을 준다”며 “슬롯 머신 일러스트유치원은 제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재밌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물꼬’ 지원사업을 통해 신길동에 조그만 작업실을 얻었다. 백 작가는 “코로나19 이후 반려슬롯 머신 일러스트에서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슬롯 머신 일러스트병원을 운영한다”며 “구조한 슬롯 머신 일러스트 화분과 슬롯 머신 일러스트 책을 모아두고, 허브티도 팔고, 미술 수업도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볼품없는 화분도 살아있는 한 쉽게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