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탄소중립·화물연대 파업…굳어버린 파라오 슬롯 공급
입력
수정
지면A5
30년 만의 파라오 슬롯 대란…건설·레미콘업계 '발동동'
친환경 규제 강화에 설비개조
제조시설 35기 중 11기 '스톱'
작년 화물연대 파업에 멈춘 공사
올해 한꺼번에 몰려 수요 폭증
대형 레미콘에 파라오 슬롯 먼저 줘
공장 앞엔 아침부터 '긴 줄'
일부는 웃돈 주고 구해오기도
전국 주요 관급공사 현장과 지방 중소형 건축공사 현장에 파라오 슬롯 품귀현상이 심화하면서 △공사 및 입주 지연 △지체상금 부과 △분양 포기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레미콘업자들이 ‘웃돈’ 등 유리한 조건을 내걸며 파라오 슬롯를 구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건설 약자’부터 때린 파라오 슬롯 공급난
재고 물량 중 파라오 슬롯 저장고(사일로) 구석이나 모서리에 있어 사실상 정상 출하가 어려운 ‘사장 재고’가 30만~35만t에 이른다.파라오 슬롯 공급 대란은 ‘건설 약자’로 불리는 중소형 건설사에서부터 심화하고 있다. 일부 파라오 슬롯업체가 대량·장기 거래하는 레미콘사에 파라오 슬롯를 우선 할당하고 레미콘사들도 수익성 높은 대형 공사 현장에 우선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레미콘업체 대표는 “은행이 고객 신용도에 따라 대출한도를 정하듯 파라오 슬롯사도 신용에 따라 물량 배분에 차등을 두고 있다”고 했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내륙과 경기·인천지역 공사 현장에서 파라오 슬롯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 수급 불안의 ‘진앙’이 된 파라오 슬롯 공장의 친환경 시설 보수가 주로 내륙에 있는 파라오 슬롯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영향이다. 내륙 지역 공사 현장은 해상 운송으로도 파라오 슬롯를 공급받을 수 없어 더 피가 마른다.
이처럼 ‘30년 만의 최악’ 수준으로 파라오 슬롯 공급난이 심화한 것은 무리한 탄소중립 정책과 화물연대 파업의 후폭풍, 현대산업개발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나비효과 등 각종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이 중 파라오 슬롯 품귀의 ‘주범’으로는 단연 무리한 탄소중립 정책이 꼽힌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탄소 다배출 업종’인 파라오 슬롯업계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12% 줄여야 한다. 2050년에는 53%까지 절반 넘게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파라오 슬롯업계는 친환경 보수 작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전국 파라오 슬롯 제조 설비(소성로) 35기 가운데 32%인 11기가 3월 현재 보수에 들어갔다.
지난해 1월 발생한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후 콘크리트 강도 기준이 강화된 점도 파라오 슬롯 공급 부족에 기름을 부었다. 레미콘을 만들 때 넣어야 할 파라오 슬롯 함유량 기준이 올라가면서 파라오 슬롯 수요가 크게 늘었다.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건설 이월 물량이 증가한 것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지난해 11월 파업으로 작년 동절기 물량 상당수의 건설 시기가 연초로 미뤄졌다. 예년보다 따뜻했던 겨울 날씨도 건설 수요 증가에 한몫했다.
○‘탈출구’ 보이지 않는 위기
지방 관급공사부터 수도권 대형 공사장까지 파라오 슬롯 공급 대란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당분간 파라오 슬롯 품귀는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수차례 파라오 슬롯·레미콘 업계와 간담회를 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레미콘업계는 파라오 슬롯 수입 지원을, 파라오 슬롯업계는 환경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모두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려운 방안이다.이 와중에 건설업계와 파라오 슬롯·레미콘 업계는 ‘네 탓’ 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는 “파라오 슬롯업계가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파라오 슬롯협회는 “수출 물량을 내수로 전환해 우선 공급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안대규/최형창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