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사이트 업 [단독] 이재용이 네덜란드 총리에게 선물한 웨이퍼의 비밀

'슬롯사이트 업 기술'로 그렸다
네덜란드 기업 슬롯사이트 업 장비 수급 위해 선물
"이 부회장 의지 반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를 만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웨이퍼 그림 속 네덜란드 총리 공관 그림은 슬롯사이트 업의 기술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총리에게 선물한 반도체 웨이퍼에 새겨진 그림이 슬롯사이트 업의 기술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슬롯사이트 업 기술이 들어간 웨이퍼라는 점이 포인트로, 네덜란드 기업인 슬롯사이트 업의 반도체 초미세공정 핵심장비 수급에 협조해달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14일(현지시간) 마르크 뤼터(Mark Rutte) 네덜란드 총리를 면담했다. 뤼터 총리는 차기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이 부회장과 뤼터 총리가 만난 건 2016년 9월 이후 약 6년 만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직접 삼성전자 전시관 '딜라이트'를 안내했다. 뤼터 총리는 지난 3월에도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해 양국 간 반도체 협력 확대를 논의한 바 있다.이번 만남에서 주목받은 건 이 부회장이 뤼터 총리에게 선물한 웨이퍼다. 이 부회장은 뤼터 총리에게 삼성과 네덜란드의 오랜 협력과 우정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문구를 12인치 반도체 웨이퍼에 네덜란드어로 각인해 선물했다.
슬롯사이트 업 EUV 노광 장비가 레이저를 쏘는 모습 [사진=슬롯사이트 업 홈페이지 캡처]
웨이퍼 배경 이미지는 네덜란드 총리 공관인데, 이 이미지를 그리는 데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슬롯사이트 업 기술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웨이퍼에 그려진 총리 공관이 사실적이어서 사진을 웨이퍼 표면에 코팅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슬롯사이트 업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레이저 기술로 충분히 정교하게 그림을 새길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 부회장이 뤼터 총리에게 슬롯사이트 업 기술이 담긴 웨이퍼를 특별 제작해 선물한 이유는 이 업체의 장비 수급이 워낙 어려워서다. EUV 노광 장비는 반도체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에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미세 회로를 새길 수 있는 최첨단 필수 장비다. 전 세계에서 슬롯사이트 업이 독점 생산·공급하고 있는데다 연간 생산량은 연간 50대 안팎에 그쳐 삼성전자로서는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세계 1위인 대만 TSMC를 추격해야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슬롯사이트 업 장비 한 대가 아쉬운 상황.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가동 중인 EUV 노광장비는 15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TSMC는 EUV 노광장비를 현재 100대 이상 운용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회장이 네덜란드로 날아가 뤼터 총리에게 슬롯사이트 업 기술이 담긴 웨이퍼를 선물하고, 슬롯사이트 업 경영진을 급히 만난 이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슬롯사이트 업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슬롯사이트 업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슬롯사이트 업 CTO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업계에 따르면 슬롯사이트 업은 올해 EUV 노광장비 장비 55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중 삼성전자는 18대를 확보하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품 부족과 슬롯사이트 업 공장 화재 영향으로 제때 장비를 납품받을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네덜란드 방문은 EUV 노광 장비를 한 대라도 더 많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납품받겠다는 이 부회장의 절박한 의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뤼터 총리와의 만남 이후 슬롯사이트 업 본사를 방문해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을 만났다. 이 자리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도 배석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과 2019년, 2020년에도 슬롯사이트 업 경영진을 만났다. 삼성전자는 슬롯사이트 업 지분 1.5%를 갖고 있다.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슬롯사이트 업 경영진은 EUV 노광장비의 원활한 수급 방안과 미래 반도체 기술 트렌드, 두 회사의 중장기 사업 방향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터 베닝크 슬롯사이트 업 CEO의 안내를 받아 모형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