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메이저사이트 메모" 원본 29년만에 공개
입력
수정
지난 65년 타결된 한일회담의 최대난제였던 대일청구권 협상을 사실상마무리지었던 ''김종필-메이저사이트 메모''의 원본이 29년만인 26일 공개됐다. 지난 62년 11월 일본측이 36년간의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명목으로한국에 제공 할 청구권 액수를 둘러싸고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협상을정치적으로 타결짓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현민자당최고위원)과 메이저사이트(대평정방.작 고)일본 외무장관간의 담판결과가담긴 이 메모는 당시 주일대사로 6차 한일회담(61 년 10월- 64년 12월)의한국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배의환씨(87)가 보관해오던 것이 다.(사진있음) 16절지 갱지 2장으로 된 이 메모는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의장의 지시에따라 김 씨가 메이저사이트장관과의 2차 담판에서 합의한 청구권 내역을 자필로적은 것으로 한일 양국이 각각 제시했던 당초 액수와 양자가 최종합의한액수와 조건등이 간략하게 정 리돼 있다. 이 메모에 따르면 일본이 한국측에 무상 3억달러(당시의 대일무역청산계정 4천 5백73만달러 포함), 유상(해외경제협력기금) 2억달러,민간상업차관(수출입은행조건 차관) 1억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같은 액수는 그뒤 후속 실무협상에서 무상,유상부분은 그대로받아들여졌으나 민간상업차관 부분은 3억달러로 조정돼 최종 타결된 바있다. 배 전주일대사는 이와 관련,최근 인터뷰에서 " 김부장(김종필씨)이62년 11월12 일 하오3시 메이저사이트 외무장관실에서 3시간50분간에 걸친단독회담을 마치고 나와 함 께 곧 바로 한국대사관으로 직행, 대사집무실에서 종이를 달라고 해 메이저사이트와의 합 의 내용을 직접 적어 내게넘겨준 것이 바로 이 메모"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일회담의 협상과정을 소상히 소개한 회고록(''보릿고개는넘었지만'')을 출간한 그는 또 " 당시 항간에 알려진것 처럼 김씨와메이저사이트가 최종 담판자리에서 작성,양자가 서명을 한뒤 주고 받은 메모는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 부분에 대해 "본래 국가간의 모든 주요회담에는 통역과기록자가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김-메이저사이트 회담에서는 일체 두 사람만의대화로 진행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한일회담 양측대표들은 자세한회담기록을 남기지 않는 대신 두사 람이 합의하는 내용을 서로 메모해 뒤에공식기록으로 받아들이기로 양해 했었다"면 서 " 당시 김부장이 써준 이메모는 그대로 본국 외무부를 통해 박최고회의 의장에 게 직보됐으며회담기록으로 옮겨졌다"고 덧붙였다. 김-메이저사이트 메모는 지난52년 한일협상이 시작된 이후 양국간에 10년째줄다리기 가 계속돼온 청구권 액수에 대한 타결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거액의 별도 정치자 금제공설,''1억3천만달러 선금설''등 갖가지 억측과파문을 불러 일으켰었다. 당시 정부는 이같은 억측을 둘러싸고 일부 정치권의 진상공개 요구와국민의 의 혹이 증폭되자 64년 12월 김준연씨( 민정당당무위원.고인)등극소수 야당의원들에게 메모내용을 공개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의혹을말끔히 불식시키지는 못했었다. 특히 이같은 김-메이저사이트메모를 놓고 현재 대일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는일제강 제연행 피해자 및 희생자 유족들은 "당시 한국측은 메이저사이트와의담판에서 피해당사자 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청구권 문제를정치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징용, 징병,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여지를없애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배씨는 이와 관련, " 김-메이저사이트 회담을 둘러싸고 별도의 정치자금을제공받기로 하는 등의 정치적 흑막은 전혀 없었다"면서 "당시 일부야당의원들이 김-메이저사이트 메 모를 물고 늘어진 것은 국민들을 의식한정치공세로 그들이 협상주체가 되었다면 입 장은 또 달라졌을 것"이라고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수석대표로 관여했던 6차회담동안에는 강제연행피해자들의 보 상문제가 거론되지 않았었다며 " 당시 청구권협정은국교정상화를 위한 국가간의 협 정으로 현재 피해자 당사자들이 제기하고있는 것과 같은 민간차원의 대일보상청구 여지는 남아있는 것으로생각한다"고 피력했다. *** 한-일양국 당초 제시액수, 조건등 적혀 있어 *** 이번에 공개된 메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측이 제공할청구권자금을 무상 , 유상, 민간상업차관 등 3개항목으로 구분, 우선무상의 경우 한국측에서는 3억5천만 달러를 요구한데 반해 일본측은2억5천만달러를 제시한것으로 돼 있다. 이 무상부분은 두 사람의 줄다리기 끝에 결국 ''3억달러를 10년동안에제공하되 그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며 양국수반에 건의,승인을 받아야한다''는 선에서 타결 됐다. 또 유상부분(해외 경제협력기금)은 한국측의 ''2억5천만달러 (이자3푼이하.7년 거치 20-30년 분할상환)''와 일본측의 ''1억달러(이자 3푼5리.5년거치 20년분할상환) 할상환''을 하는 조건아래 합의된 것으로 나타나있다. 65년 6월 한일협정 체결을 8개월 앞두고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의권유로 회담수석대표 자리를 김동조대사에게 넘겨줬다는 배씨는 " 박정권이들어서면서 청구권 액수에 대한 한일간의 엄청난 입장차이 때문에 공전을거듭하던 한일회담을 정 치적으로 매듭짓기로 결정했었다"면서 " 당초 대일청구권에 대한 명목으로 고작 5 천만달러, 7천만달러 등을 제시했던일본이 김-메이저사이트 회담에서 그처럼 합의를 한데 는 미국의 역할이컸었다"고 말했다.